동병상련
자원봉사 활동기
고종목
쇼핑하는 일을 돕기로 한 시각 장애인과 홍제동에서 약속한 시간에 만났다. 자원봉사자와 시각장애인이 만나면 봉사자가 팔을 잡으라는 신호로 장애인의 팔에 봉사자의 팔을 갖다 대는 신체 접촉이 있게 된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장애인 그녀가 내 왼팔을 잡다가 멈칫 놀라는 듯 "왜 팔이 이렇게 가늘지요" 물었다. 나는 태어나서 백일을 지난 때 하룻밤의 고열로 인해 왼팔을 전혀 쓸 수 없는 소아마비 장애인이 되어 평생을 오른팔 하나에 세상을 의지해 힘들게 살아왔다고 설명을 했다.
그녀는 한참을 말이 없다가 망설이는 듯 "아저씨는 불편한 몸으로 시각 장애인들을 도우세요" 했다. 그녀는 중도 실명으로 죽고 싶도록 심한 갈등을 겪었다며 실명한 지 십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런데 오늘 아저씨를 만나고 나니 자기가 생각을 잘못하고 있었다며 앞으로는 자신에게도, 사람 만날 때도 떳떳하게 만날 거라고 당찬 말로 아저씨를 만난 것이 너무나 고맙고 감사하다고 했다.
자신에게 하루하루 주어지는 고난과 부딪히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면, "나에게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찾아야 하겠다"는 말도 했다.
쇼핑을 도와주어서 감사하다는, 내가 더 감사하다는, 감사 바이러스를 주고받고, 시각 장애인 그녀는 그의 집에 가서 나는 내 집에 와서 스스로에게 오늘 하루치 동병상련의 가치에 대해 몇 점이나 줄 수 있을까?
고민 아닌 고민도 감사
-전문/ P.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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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으로 보는 세상
딩동 딩 동 "부름받고 왔습니다."
오늘은 시각 장애인과 병원 가는 날이다. 반지하 방 현관문을 나서는 시각 장애인에게 "푸른 아침입니다." 하고 나는 그의 손에 '푸른'을 쥐어 주었다. 손끝으로 세상을 보는 그들은 둥글다, 각이다, 곡선, 직선, 길다, 짧다, 굵다, 뭉툭하다, 뾰족하고 가늘다, 등등 촉각으로 인식한다.
나에게 시를 가르쳐주신 오남구 시인께서 "처음부터 빛을 보지 못한 선천성 시각 장애인은 눈으로 인식하는 '색의 경계'가 없다고 가르쳐 주셨다. 나는 그들에게 촉각적 이미지를 손에 쥐어 주었다. 그분은 또 "보라섹이 어떤 색이냐"고 물었다. 그 물음에 나는 어떤 방법으로도 설명하여 줄 수가 없다고 미안미안하다고 했다. 그분은 가는 한숨 섞인 말로 오히려 미안하다며 "괜찮아요 괜찮아요" 오늘 도와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거듭거듭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푸른 촉각의 미안 감사
-전문/ P.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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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문집 『감사 바이러스』에서/ 2019. 7. 29. <글나무> 펴냄
* 牛步 고종목/ 1937년 강원 평창 출생, 시집『성마령의 바람둥지』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곤드레 아라리』『바늘과 실 그리고 나』『바늘구멍』『바람의 언어』『조각놀이』『시, 後』『조각보 아리랑』, 작품집『조각보 이야기』, 2007년<현대 조각보전(송파문화원)> & 초대전(구로 고척도서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개최 기념<조각놀이 이야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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