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인간희극』이 보여주는 미스터리한 세계/ 김성달(소설가)

검지 정숙자 2022. 1. 8. 03:08

 

    『인간희극』이 보여주는 미스터리한 세계

 

    김성달/ 소설가

 

 

  발터 벤야민이 "모든 사람이 해야 할 일은 빅토르 위고의 이름이 들어갈 자리에 발자크의 이름을 넣는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위대한 작가 발자크. 누구보다도 돈을 사랑해 소설 창작 말고도 온갖 사업을 벌이지만 번번이 실패하는 바람에 앞문과 뒷문이 함께 붙어 있는 집에 살면서 빚쟁이가 오는 기척이 느껴지면 뒷문으로 도망쳐야 했던 불운한 천재. 그러면서도 모두가 잠든 밤이면 도미니카회 수도복을 입고 커튼으로 막아 바깥 세계와 완전히 차단한 공간의 네모난 작은 책상 앞에 앉아, 커피만 마시면서 하루 열다섯 시간 이상의 작업을 통해 『인간희극』의 세상을 창조한 작가.

  그가 창조한 『인간희극』의 세상은 파리라는 도시를 소설로 바꾸어 놓은 거대한 작업이었다. 그는 최초로 도시를 하나의 언어이자 이데올로기로 직감한 작가이면서도, 은밀한 사교계와 사회 주변부의 신비스러운 개인의 감추어진 전능성, 그 놀라운 힘을 능청스럽게 꾸며내는 이야기꾼이었다. 이후 긴 세월 동안 『인간희극』의 수많은 이야기는 이곳저곳 가면을 바꾸어가며 등장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몬테크리스토 백작』, <오페라의 유령>, <대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19세기 이후 많은 소설가들이 강박적으로 사용했던 유희적이면서도 진지한 소설 기법이기도 하다. 『인간희극』은 주요 감정선이 끊임없이 이 인물에서 저 인물로 옮겨다니면서, 사건 플롯의 많은 장면이 다소 비논리적이거나 부정확하게 흩어지는 경우에도 활발하게 진행된다. 가끔 문제의 해결책이 너무나 손쉽게 발견되고 실망스러을 정도로 단순하기도 하지만 이런 모험의 플롯이 독자들에게 큰 즐거움 주는 것은 대도시의 신화에 기초한 서스펜스 심리 드라마이기 때문이었다.

  『인간희극』의 세계는 파리를 어슬렁어슬렁 걷고 있는 청년을 두고도 한 편의 소논문을 쓸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기도 하다. 거리의 행인이나 부랑자에 관한 관찰부터 남루한 노인과 여자 그리고 아이들에 대한 묘사와 다양한 부류의 인간들이 내뱉는 말이 공존하는 거리 풍경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이런 거리의 풍경에 더해 누추한 것에서부터 사치스러운 실내 묘사를 덧붙이고 복잡한 사회의 관료와 그들의 세계를 묘사하면서 파리를 살아 있는 유기체로 만든다.

  파리를 미스터리 가득한 도시로 만든 『인간희극』은 발자크의 예민한 호기심이 만들어낸 세상이다. 발자크는 그가 살아온 인생과는 달리 켤코 비극적이지도 희극적이지도 않았으며, 다만 이 세상 모든 것에 호기심을 느낄 뿐이었다. 복잡하게 뒤엉킨 사물에서 항상 무엇인가를 선험적으로 알아채고 독자들에게 미스터리를 제시한다. 가까이에서 또는 멀리서 인물들을 묘사하고 정의하며 규정하고 설명한다. 이런 과정들은 인물들의 개별성을 전달하고 그 힘의 놀라움이 독자들에게 전달될 때까지 계속된다. 인물들이 내린 결론이나 관찰, 장광설과 재치 섞인 농담에는 심리적인 진실이 들어 있다. 그러면서도 무엇인가를 해결해야 하는 미스터리를 푸는 데 실패한 한숨과 자책, 교묘한 술책도 포함되었다. 『인간희극』의 복잡한 세계는 사회학적이며 동시에 서정적이면서도 경이롭다.

  『인간희극』은 전통적인 미학의 규범을 무시하고 있다고 할 정도로 자체 완결성이 떨어지고, 2천여 명의 등장인물 가운데 400명이 넘는 인물이 여러 작품에서 중복해서 등장한다. 하지만 그것은 흠결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가 살면서 하나의 사건이 끝났다고 그 자리에서 단호하게 인간관계의 선을 그을 수 없듯이, 수많은 등장인물은 완결된 이갸기의 폐쇄된 작품 주인공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된 사회 구성원들로 등장한다. 개별성이 아니라 복잡한 층위로 연결되어 이루어진 구조물 『인간희극』은 단일화된 하나의 거대한 사회소설이면서, 인류 역사상 가장 희귀하면서도 위대한 문학적 조형물이다. '결점을 들춰낼수록 오히려 그 마술적 영향력이 늘어가기만 한다'는 발자크 소설의 비밀이 이 안에 숨어 있다.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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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의 집 · 서울』 2021-12월(242)호/ <고전에게 길을 묻다>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