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풀의 행성/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12. 6. 5. 09:43

 

      풀의 행성

 

       정숙자

 

 

  수레가 풀을 깔고 지나가네

  관절 부서지는 굿, 꽃봉오리 터지는 바닥, 두개골 나뒹

구는 길, 비명 움켜쥐고 감은 눈동자, 벌레들이 삼가 초

혼가를 부르네.

 

  풀이여

  풀잎이여

  풀줄기들이여

 

  일어섭시다

  풀답게 풀뿌리답게 일어섭시다

  다시 일어나 흰 꽃, 붉은 꽃, 노란 꽃을 기웁시다. 다

시 일어나 흰 꽃, 붉은 꽃, 노란 꽃을 매답시다. 다시 일

어나 흰 꽃, 붉은 꽃, 노란 꽃을 밝힙시다. (자살하지 맙시

다) (또)

 

  바큇살 두려워하지 맙시다

  피는꽃으로 스스로에게 갚아줍시다

  언젠가는 꼭 횃불을 싣고 강 건널 뗏목이오니

  천 번 다친 넋만 번 일으킵시다

  수레는 수레

  풀은 풀      ※       그것만 기억합시다

 

  지구는 풀의 행성이라네.

  이슬과 개미의 행성이라네. 풀의 엔진을 나비는 아네.

풀은 함부로 녹슬지 않네. 게으르거나 튀지도 않네. 최후

에 풀이 있었네.  

   -『문학의 오늘』2012-여름호

 

   --------------

 * 시집『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에서/ 2017.6.26.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뿌리 깊은 달』『열매보다 강한 잎』등, 산문집『행복음자리표』『밝은음자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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