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의 행성
정숙자
수레가 풀을 깔고 지나가네
관절 부서지는 굿, 꽃봉오리 터지는 바닥, 두개골 나뒹
구는 길, 비명 움켜쥐고 감은 눈동자…, 벌레들이 삼가 초
혼가를 부르네.
풀이여
풀잎이여
풀줄기들이여
일어섭시다
풀답게 풀뿌리답게 일어섭시다
다시 일어나 흰 꽃, 붉은 꽃, 노란 꽃을 기웁시다. 다
시 일어나 흰 꽃, 붉은 꽃, 노란 꽃을 매답시다. 다시 일
어나 흰 꽃, 붉은 꽃, 노란 꽃을 밝힙시다. (자살하지 맙시
다) (또)
바큇살… 두려워하지 맙시다
피는… 꽃으로… 스스로에게 갚아줍시다
언젠가는 꼭 횃불을 싣고 강 건널 뗏목이오니
천 번 다친 넋… 만 번 일으킵시다
수레는 수레
풀은 풀 ※ 그것만 기억합시다
지구는 풀의 행성이라네.
이슬과 개미의 행성이라네. 풀의 엔진을 나비는 아네.
풀은 함부로 녹슬지 않네. 게으르거나 튀지도 않네. 최후
에 풀이 있었네.
-『문학의 오늘』2012-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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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에서/ 2017.6.26.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뿌리 깊은 달』『열매보다 강한 잎』등, 산문집『행복음자리표』『밝은음자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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