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하트
정숙자
검은 새를 먹었다
검은 새가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럴 때 생각은 깃털보다 유용하다
검은 새의 생각이 내 중심에 연결된다
<검은 새와 나> 우리의 생각은 이제 방목이 아니다
의지에 따라 고삐를 잡는 심사와 숙고
검은 새가 잘 소화되도록
검은 새가 (어둠을 주시한 나머지) 정신분열 일으키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검은 새는 기관을 두루 갖춘 유기체가 아닌가
톱니, 칼날, 소리까지 예리한 번갯불이 아닌가
하늘 끝까지 겨냥할 수 있는 눈, 폈다하면 구만리 압축
할 수 있는 날개도 염려치 않을 수 없다. 이 새가 거칠어
지면 끝장이다. 모두.
누가 왜
이 검은 새를
내 안에 던졌을까?
무사히 배설될 때까지…
길에서든 침상에서든 검은 새…
검은 새… 검은 새…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내 유치幼齒 한 개를 물고 태양 속으로 날아가는 검은
새…
그 새가 정말 검은 새일까. 흰 새가 아니었을까. 빛에
싸이는 내가 남는다.
-『현대시』2012-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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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에서/ 2017.6.26.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뿌리 깊은 달』『열매보다 강한 잎』등, 산문집『행복음자리표』『밝은음자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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