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돌
정숙자
나는 이미 유골이다. 나는 이미 골백번도 더 유골이다.
골백번도 더 자살했고 골백번도 더 타살됐고 그때마다 조
금씩 더 새롭게 어리석게 새롭게 어리석게 눈떴다.
파도야, 보이느냐?
파도야, 보이느냐?
나는 항상 유골이다. 살았어도 죽었어도 떠도는 유골이
다. 나는 골백번도 더 죽었고 골백번도 더 눈뜰 수밖에 없
었던 유골이다. 나는 늘 어리석어서 죽었고, 어리석은 줄
몰랐다가 죽었고, 어리석어서 살아났다. 더 죽을 이유도
없는데 죽었고 더 살 필요도 없는데 살았다.
유골에게 걸칠 거라곤 바람뿐
유골에겐 바람만이 배부를 뿐
그래도 나는 저놈의 태양을 사랑하노라. 저놈의 태양
말고 무엇을 또 사랑할 수 있단 말이냐. 파도야, 그리고
너를 사랑하노라. 파도야! 파도야! 함께 할밖에 없노라.
-『문학청춘』2012-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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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에서/ 2017.6.26.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뿌리 깊은 달』『열매보다 강한 잎』등, 산문집『행복음자리표』『밝은음자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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