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몽돌/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12. 6. 5. 00:59

 

     몽돌

 

      정숙자

 

 

  나는 이미 유골이다. 나는 이미 골백번도 더 유골이다.

골백번도 더 자살했고 골백번도 더 타살됐고 그때마다 조

금씩 더 새롭게 어리석게 새롭게 어리석게 눈떴다.

 

  파도야, 보이느냐?             

  파도야, 보이느냐?

 

 나는 항상 유골이다. 살았어도 죽었어도 떠도는 유골이

다. 나는 골백번도 더 죽었고 골백번도 더 눈뜰 수밖에 없

었던 유골이다. 나는 늘 어리석어서 죽었고, 어리석은 줄

몰랐다가 죽었고, 어리석어서 살아났다. 더 죽을 이유도

없는데 죽었고 더 살 필요도 없는데 살았다.

 

  유골에게 걸칠 거라곤 바람뿐

  유골에겐 바람만이 배부를 뿐

 

  그래도 나는 저놈의 태양을 사랑하노라. 저놈의 태양

말고 무엇을 또 사랑할 수 있단 말이냐. 파도야, 그리고

를 사랑하노라. 파도야! 파도야! 함께 할밖에 없노라.

   -『문학청춘』2012-여름호

 

   ----------------

  * 시집『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에서/ 2017.6.26.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뿌리 깊은 달』『열매보다 강한 잎』등, 산문집『행복음자리표』『밝은음자리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