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2012-봄호
[미네르바 셀렉션]/ 강영은(시인)
비대칭 반가사유상
정숙자
한 칸 때문에 엎드릴 것이다
깎고 팔 것이다 바람을 키울 것이다
한 칸 때문에 뒤척일 것이며 물렁뼈 깊어질 것이다
휙휙 휙 머리 날아갈 것이다
맑은 강 바라기도 할 것이다
(그 한 칸이야 기둥이었다가 대들보였다가 서까래였
다가 툇마루였다가… 에라 그게 다 타고난 분모이렷다.)
그 한 칸에 쏟아 부은 기도들이
창이었음을 지붕이었음을
문득 문득 깨치게도 될 것이다
한 칸의 우울, 한 칸의 쓰라림
붓다에게도 그 한 칸은 있었을 것이다
그 한 칸이 바로 그를 해결한 미소였을 것이다
-『애지』2011-겨울호
▶ 불이不二의 세계를 보여주는 비대칭의 세계 _ 강영은
대좌에 앉은 부처(반가사유상)는 오른쪽 다리를 왼쪽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다. 그리고 오른팔을 굽혀 오른손을 오른뺨에 살짝 대고 있다. 그는 깊은 사색에 잠겨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부처가 태자 시절에 인생무상을 느껴 고뇌하는 명상 자세를 표현한 모습이다. 공교롭게도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이나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오른손을 사용하고 있다. 오른손 지배문화라는 모순을 우연적으로 드러내는 인위처럼 느껴진다. 오른쪽을 표상하는 힘의 논리가 두드러지는 듯 보이지만 왼편을 주목하면 오른편과 다른 세계가 드러난다. 좌우 대칭의 이분법적 편 가르기가 팽배한 현실 속에서 쉽사리 보이지 않는 결핍의 세계이며 자연의 시간이다. 인위적 시간 속에 들어있지 않은 이러한 비대칭의 세계를 시인은 ‘한 칸’이라고 명명한다.
사전에 의하면, ‘한 칸’은 ‘일정한 규격으로 둘러막아 생긴 공간이자, 사방을 둘러막은 그 선의 안이자 집의 칸살이’라고 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완벽한 공간인 백 칸에서 한 칸이 모자라는 결핍의 공간이며 존재를 억압하는 가장 작은 공간이며 유일무이의 공간인 셈이다. 이에 대해 시인은 “깎고 팔고 뒤척이며 물렁뼈가 깊어지”거나 “기둥이었다가 대들보였다가 서까래였다가 툇마루”가 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이는 변형을 이루는 근원적 결핍이 비대칭을 이룬 세계와 존재에 있음을 말한다. 변형의 공간이자 존재인 ‘한 칸’ 속에서 무수한 공간과 시간을 만난다. 다양한 의미 층을 지닌 ‘한 칸’이란 모든 존재의 타고난 ‘분모’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시적 표현이 지시적 의미 외에 다양한 의미 층을 입체적으로 지니는 것을 앰비큐어티ambiguity의 상황이라 말한다. 이 앰비큐어티는 잠재적 다의성多義性, 잠재적 의미 불확정성으로 인하여 이전까지 극복되어야 할 과제로 생각되어 왔지만 정서적 언어와 과학적 언어의 상이점을 비평적 안목에서 발전, 심화시킨 엠프슨 W, Empson에 의해 의미의 풍요함, 다중성 복합성들을 지닌 시적 표현으로서의 새로운 가치를 획득했다. 막연히 애매하고 불투명한 상태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시적 언어의 중요한 특성으로 기치를 올린, 이 앰비큐어티가 「비대칭 반가사유상」에서 깊은 사유로 빛나고 있음을 본다.
왼손과 오른손의 대립은 따로 있되 늘 함께 하는 공동선共同善의 방책인 불이不二의 세계, 만물동체萬物同體의 정법에서 보여주는 비대칭의 세계를 시인의 눈이 날카롭게 통찰해낸 것이다. 성도成道 전의 석가모니의 모습을 나타낸 반가사유상은 존재의 결핍을 딛고 일어선 생명의 힘을 담고 있다. “붓다에게도 그 한 칸은 있었을 것이다// 그 한 칸이 바로 그를 해결한 미소였을 것이다”라고 시인은 말한다. ‘한 칸’을 가득 채움으로 완성된 반가사유상의 미소야말로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이상적인 모습, ‘한 칸 때문에 엎드’려 왔던 모든 존재의 궁극적인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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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2012-봄호, <미네르바 셀렉션>에서
* 강영은/ 제주 출생, 2000년『미네르바』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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