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과 강
정숙자
시는 체험이자 추체험이다
누구든 시의 아름다움에 한 번 눈뜨면 그 매혹에서 벗어날 수 없다. 권력이나 부富의 위력도 시 앞에서는 별무소용. 시의 궤도에선 오로지 시만이 위도가 될 뿐.
그렇다면,
정녕 시란 무엇인가? 맞닥뜨릴 때마다 답변이 묘연하다. 그런데도 분명 좋은 시는 현실을 가로지른다. 신의 축복을 받은 몇몇 pen에 의해 모습을 드러내는 강.
시인은 성직자만큼이나 신과 가까운 존재라 한다. 시인에게 한 송이 돌멩이를 주어보라. 시인은 그와도 너끈히 대화할 것이다. 숲속의 마지막 요정이 아닌가 싶게.
시인이 그 투명한 날개를 저어 날아가 버리지 않고 여기 남아있는 까닭은,
아직 뜨거운 피의 무게 때문이다
아직 뜨거운 피의 진실 때문이다
시인은 돌연 태어나는 자이며 여타의 일에 복무할 수 없도록 구워진 불가사의다. 암벽 아래 숨겨진 영감을 문득 발견하는 자. 혹은 신의 축복 아래 지극히 고통받는 자.
누구의 눈에도 따뜻한 한 편의 시는
소녀에서 노파에 이르기까지, 소년에서 노옹에 이르기까지
홀로 쌓는 탑 속의 등, 뭍에서 하늘까지 세워지는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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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가』 2021-가을(4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