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나의 근작시

누빔점s

검지 정숙자 2021. 7. 3. 13:41

 

    누빔점s

 

    정숙자

 

 

  시간은 시간을 버리고 잘도 떠난다. 시간이 시간을 버리고 어디로 가는지, 어디서 오는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그가 여기 머무는 동안 하는 일들을 나는 오랫동안 봐왔다.

 

  태어나게 하고

  늙게 하고

  병들게 하고

  죽게 하는 것을···

 

  시간은 가장 신뢰하는 신의 사절/충복인지도 모른다. 존재하면서도 눈에 띄지 않는 기이奇異만 보더라도 그가 신의 권한대행임은 자명하다. 시간은 달력을 바꾸어 걸게 하고, 숫자를 새롭게 인식시키며 무리하게 달리거나 늦추지 않는다.

 

  우리가 시간으로부터 배워야 할 게 있다면 자연스레 떠나는 일과 보내는 일, 맞이하는 일, 끊임없이 활동하는 일일 것이다. 시간은 어떤 제스처(gesture)를 취하거나 잠언을 들려준 적 없지만, 모든 걸 알려 주고 해결하는 만능술사다. 시간은 평등한 박애이고 냉정한 압수자이여 위로인 동시에 매듭이다.

 

  시간이 주는 것, 가져가는 것, 놓고 가는 것들 모두를 의미롭게 바라보고 사랑하리라. 삶이 고통스러울지라도 그에 대한 색색의 감각 자체가 축복이므로···. 시간은 급히 떠나면서도 깊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보여주고 심어준다.

  우리를 여기에 데려왔고, 또한 데려갈 시간이여, 너무 빨리 지나가는 그대에게 긴 인사를 할 수 없기에 매 순간 이렇게 맑게

  안녕?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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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웹진『시인광장』 2021-7월(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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