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 거울
정숙자
비춰 낼 대상이 없을 때 거울은 폐허다
(신민 없는 폐하는 폐허다)
내가 너의 거울이라면
네가 나의 거울이라면
내 안에 네가 없다면
네 안에 내가 없다면
우리에게 우리가 없다면
(그 거울들 역시 폐허다)
광장을 하늘에 걸린 거울이라 치자. 그 단단한 두께 또한 내가, 네가, 우리가 살아 움직이는 동안만 현상을 담아내고 연결하고 소통한다. 그런 게 거울이고 광장이고 현장이다. ∴ 어느 날 태풍이 몰아닥치면,
광장은 가차 없이 주인공을 바꾼다. 통념상 그림자와 거울은 동일하다. 사실이 아닌 피사체를 수용하지 않는다. 비록 기관 없는 그림자일지라도 평면거울일지라도 속임을 위한 속임수 따위는 들이지 않는다.
단, 인간
지각 지성은
폐허 속 오류를 굳건히
묵묵히 묶어 미래에 전한다
기록과 기억은 깨진 거울을 되 맞추고
상황 이후의 그림자까지도 복원/전파한다
그림자와 거울은 fact 하나로 혈액형을 유지한다. ‘대체’를 모른다. 동맥과 정맥, 모세혈관들 강으로 바다로 호수로도 아침을 공급한다. 그리하여 광장은 썩지도 않고 피라미 붕어 가재들까지 눈빛이 여명이다.
나는 나 자신에게 신민인가를
나는 나 자신에게 폐하인가를
그 진실을 묻기 위해
정오에
태양 아래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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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파란』 2021-여름(2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