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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해수 문학평론집『푸자의 언어』(발췌)/ 푸자 : 최애란

검지 정숙자 2021. 8. 10. 14:23

 

    푸자

 

    최애란

 

 

  강가*의 신을 만나러

  사이클릭샤를 타고 가트로 간다

  해는 이미 떨어졌고

  신을 부르는 불의 의식이 한창이다

  푸자, 산 자를 위한 힌두 의식이라는 걸

  오늘에야 알았다

  무심히 흐르고 있는 강가에서

  강가가 허락한 강가에서

  신을 생각하다 신을 벗었다

  홀가분한 그거면 충분하다

  그것, 참 좋다

  제단 위로 꽃비가 내리고

  죽은 자가 스치는 사이

  꽃가지, 곱내를 드리우는데

  타다 남은

  꽃잎을, 두 손으로

  받아 낸 아버지

 

  살아남지 못한 나를 강물에 띄우고 있다

      -전문-

 

  바람이 짚고 가는 푸자pooja의 언어(발췌)_전해수/ 문학평론가

  최애란 시인에게도 여행 중 '푸자pooja'를 직접 만난 경험은 매우 특별한 일이었을 것이다. 위 시를 보면 시인은 분명 '푸자pooja'를 목도目睹한 것이 틀림없다. 사진을 보거나 들은 이야기로는 위 시 「푸자」를 쓸 수 없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시인은 "강가(갠지스강)의 신을 만나러" 일부러 "사이클릭샤를 타고 가트로" 가고 있다. 해는 진 지 오래고 "신을 부르는 불의 의식(푸자)이 한창"인 그곳에서 시인이 본 것은 불타는 시신을 바라보는 "무심히 흐르고 있는 강가/ 강가가 허락한 강가"였던 것이다. 강들이 허락한 "강가(갠지스강)는 살아남지 못한 자들이 살아남은 자들과 작별하는, 신성하나 일상적인 곳이기도 하다. 시인은 "신을 벗"으며 신처럼 옆으로 빗겨 앉는 "신을 생각"한다. 신은 신고 있을 때와는 달리 벗으면 빗겨 있게 되는 것이었던가? 시인이 이내 "홀가분한" 마음을 느끼는 것은 푸자pooja를 통해 '해탈解脫 그 너머의 시간'으로 조금 더 다가선 때문일 것이다.

  시인은 '푸자pooja'를 함께하며 죽은 자가 스쳐 가는 물과 불의 '사이' 이른바 "산 자를 위한" 이 "힌두의식"에서 '산 자인 자신'을 인식認識하기에 이른다. 바로 이때에 "제단 위로 꽃비가 내리고" "타다남은 꽃잎"을 "두 손으로 받아 내"는 죽은 자의 "아버지"가 나의 아버지가 되어 산 자인 나를 살아남지 못한 자를 받들듯이 강보를 안은 손처럼 두 손을 모아 "강물에 띄"워 보내는 착시에 빠져든다. 시인은 그 절정의 순간, 그것으로 "충분"한, "그것, 참 좋은", 기묘한 감정의 교차를 느끼게 된 것이다. 시인은 잠시 자신이 "강물에 띄워"진 죽은 자와 동일시되어 "살아남지 못한 나"의 영혼을 마주하며 신성한 푸자pooja 온전히 대면하고 있다. 이처럼 일상과 가까운 푸자의 죽음의식은 살아남은 자와 죽은 자 '사이'가 멀지 않음을 일깨우고 있으며 그 촘촘한 간극의 꽃가지를 흩뿌리며 불과 물의 경계에서 무심히 흐르고 있는 "강가"(갠지스강)를 바라보는 시인의 투명한 마음을 이내 알아차리게 된다. (p. 시 490-491/ 론 491-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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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해수 문학평론집 『푸자의 언어』 2021. 6. 29. <상상인>펴냄

   * 전해수/ 2005년 『문학선』으로 평론 부문 등단, 비평집『목어와 낙타』(2013), 『비평의 시그널』(2018), 연구서『1950년대 시와 전통주의』(2006),『메타모포시스 시학』(2019),『근대전환기문학예술의 메타모포시스』(2019, 공저), 『인물로 보는 근대 한국』(2020, 공저),  현) 상명대학교 인문과학 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