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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고_세계문학 속의『한국전쟁』中/ 데이비드 핼버스탬

검지 정숙자 2021. 8. 1.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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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비드 핼버스탬

    David Halberstam, 1943-2007, 64세

 

                     

    『콜디스트 윈터

    The Coldest Winter

 

                       

 

  데이비드 핼버스탬(David Halberstam, 1943-2007, 64세)은 미국의 작가, 언론인, 역사가로 베트남전쟁, 정치, 역사, 민권 운동, 비지니스, 미디어, 미국 문화, 스포츠 저널리즘 등과 관련된 많은 책을 썼다.

  미국에서 가장 뛰어난 저널리스트이자 역사가 중 한 사람인 그는 1934년 4월 10일 뉴욕에서 태어났다. 하버드대학을 졸업한 후 작은 일간지 기자로 일하다가 ⟪네쉬빌 테네시⟫에서 일했다. 이후 ⟪뉴욕 타임스⟫ 재직 시절 베트남전쟁의 진실을 밝히는 보도로 1964년에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핼버스탬은 민권운동을 취재한 기록인 『아이들(The children)』(1999), 베트남전쟁을 다룬 최고의 베스트셀러『최고의 인재들(The Best and Brightest)』(1972), 스포츠 저널리즘을 다룬 『게임의 휴식(The Breaks of the Game)』등 모두  21권의 베스트셀러를 집필했으며, 특히 『최고의 인재들』을 발표하면서 뉴저널리즘의 창시자이자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2007년 4월 23일, 핼버스탬은 『콜디스트 윈터(The Coldest Winter: Amenrica and the Korean War)』의 원고를 탈고한 후 닷새만에 캘리포니아 멘로파크에서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

  영화가 된 작품으로『팀메이트(The Teammates)』(2002)와 『아마추어(The Amateurs)』(1985), 영화<Rowing Through>의 원작)가 있다. 

 

 

  작품 속으로

                 

  『콜디스트 윈터(The Coldest Winter)』에는 '미국과 한국전쟁(Amenrica and the Korean War)'이라는 부재가 붙어 있듯이, 문학적 작품이라기보다 한국전쟁과 관련된 여러 가지 사건과 인물들을 심층 분석한 일종의 평론서이다. 유명 언론인답게 광범한 자료를 섭렵하고 날카로운 분석을 한 것이 특징이다. 한국어판도 1, 084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고 다루는 토픽도 다양하다. 한국전쟁에 관한 책으로 빠뜨릴 수 없는 책이라 하겠다. 더구나 퓰리처상을 받은 유명 저널리스트의 마지막 저서라니 더욱 의미있다.

  그런가 하면 간혹 심한 논평을 가하여 객관적인 균형감을 잃은 것도 눈에 띈다. 예를 들면, 맥아더 장군을 처음부터 끝까지 형편없는 사람으로 혹평하고 상당히 비판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이 책은 11부 53장으로 구성되었다.

  책이 시작하는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이렇게 서술한다.

 

  미군들은 자신들의 희생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할뿐더러 미국 국민들이 자신들이 참전했던 전쟁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아 소외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전에 벌어진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미국 전체가 위대한 목표를 향해 일치단결했다. 참전 군인들은 모두 민주주의 정신과 소중한 가치를 드높였다며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한국전쟁은 제한적이고 가혹한 전쟁이었다. 한국전쟁을 통해 좋은 걸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한 미국 정부는 하루빨리 발을 빼려 했다. 참전 용사들은 귀국 후 자신들이 보고 느꼈던 전쟁에 대해 주변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실제로 일상 대화에서 한국전쟁에 관해 얘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한국전쟁보다는 국내 현안과 승진, 신형 자동차와 주택 마련이 훨씬 더 피부에 와 닿는 화제였다. 한국에서 날아오는 소식이 늘 암울했던 것도 사람들이 전쟁 이야기를 피한 이유 중 하나였다. 전쟁이 잘 치러지고 있을 때에도 실제 전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국면을 타개할 돌파구는 보이지 않았으며, 특히 1950년 11월 말에 중공군이 개입하자 승리는 저만치 멀어져 버렸다. 중공군의 참전으로 교착상태가 이어지자 군인들 사이에는 "비기기 위해 죽어야 하나(die for a tie)"라는 냉소적 표현이 유행했다. 이처럼 당시 참전 용사와 일반 미국인들 사이의 거리감은 상당히 컸다. 이전의 다른 전쟁에 비해 유독 한국전쟁 참전 용사들이 인정받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들이 얼마나 용맹을 떨쳤는지 또는 대의명분이 얼마나 정당했는지 상관없이 말이다. (17쪽)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들은 추위와 불안에 시달려야 했다.

 

  북진을 이끌던 일부 장교와 사병들에게는 걱정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전투경험이 있는 장교들은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고 지형은 점점 험악해지는 상황에서 진군을 감행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후에 (미군들이 가장 훌륭한 남한군 지휘관이라 여겼던) 남한군 제1사단장 백선엽 장군은 너무나 고요한 적진으로 진군할 때 느꼈던 알 수 없는 불안감을 "혼자 외떨어져 있는 것 같은 고립된 느낌"이었다고 회고했다. 일본군과도 전투경험이 있는 베테랑 장군이었지만 당시에는 그 불안감의 원인을 알지 못했다. 전에는 남쪽으로 향하는 피난 행렬로 늘 인파가 넘쳤는데 이번에는 인적이 전혀 없는 극도의 적막감이 부대를 엄습했다. 도로는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던 것처럼 텅 비어 있었으며 기온은 매일 조그씩 어 떨어졌다. (30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진하여 한반도의 북쪽 끝 압록강에 도달한다.

 

  "압록강이다" 10월 말 압록강에 도달한 백선엽 장군의 부대원들이 소리쳤다. "드디어 압록강이다" 그런데 10월 25일 중공군이 공격을 개시했다. 백선엽 장군은 갑자기 콘크리트 벽에 쾅 부딪히는 느낌이었다고 회고했다. 처음에 남한군 지휘관들은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했다. (31쪽)

 

  이 책은 강대국에 둘러싸인 우리나라를 폴란드에 비유하기도 하고, 낙동강전투를 지휘한 월튼 워커(Walton Harris Walker) 장군에 대한 서술도 흥미롭다. 맥아더의 해임에 관해서는 꽤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한국은 작고 자부심이 강한 나라였지만 불행히도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야심에 찬 주변 강대국은 한 나라를 공격하는 데 필요한 전초기지나 다른 두 나라의 공격을 막는 방어막으로써 한반도를 이용하려 했다. 1950년 6월 이전 오래전부터 한반도 주변의 막강한 이웃 나라들은 모두 경쟁국에 대한 방어수단과 경고차원에서 한국을 침략했다. 독일과 러시아 사이에 끼어 불행했던 폴란드의 지리적 위치와 다를 바가 없었다. 남한의 대통령이 된 이승만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라는 한국 속담을 즐겨 인용했다. (99쪽)

 

  2개월 동안 인민군 남하를 막아낸 제8군의 능력은 개인적으로 월튼 워커의 훌륭한 어적으로 기록되었다. 그는 7월 말부터 9월 중순까지 약 6-7주 동안 모든 상황에 빈틈없이 대처하는 용맹스럽고 탁월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도쿄사령부와 워싱턴 정부로부터 무시를 당하고 탱크 전투가 불리한 지역에서 프랑스와 독일에서 이끌었던 군대에 비해 전투력이 형편없는 부대를 이끌면서도 말이다. 미군 역사상 지난 100여 년간 벌어진 전투 중에서 가장 무성의했던 전투가 한국전쟁이었다. 그중에서도 1950년 7월부터 9월까지 낙동강 근교에서 수 차례 벌어진 소규모 전투에는 거의 관심도 두지 않았다. 따라서 낙동강방어선 전투를 지휘했던 월튼 워커는 미군 역사를 통틀어 공로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가장 불운한 사람이 되었다. 공군으로 복무했던 마이크 린치는 "월튼 워커는 잊혀진 전쟁의 잊혀진 지휘관"이라고말한 바 있다. (383쪽)

 

  맥아더는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과거의 화려함을 강조하며 장황하게 이어진 연설의 결론을 내렸다. "이제 나는 52년간의 군 생활을 접으려 합니다. 20세기가 시작되기 전에 육군에 입대하여 어린 시절 내내 꿈꾸던 바를 잃었습니다. 웨스트포인트에서 엄숙한 서약을 한 후 세월이 흐르며 여러 가지 사건이 발생했고 내 꿈과 포부도 서서히 희미해졌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당시 막사에서 자주 부르던 노래를 그대로 기억합니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가사입니다. 그 노래에 나오는 노병처럼 나는 이제 군 생활을 마무리하고 조용히 사라질까 합니다. 주어진 의무를 완수하고자 최선을 다했습니다. 신께서는 내게 주어진 의무를 확실히 볼 수 있도록 밝은 빛을 비춰주셨습니다. "미국을 통틀어 겸손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한 말 치고는 굉장히 겸손한 표현이었으나 사실 그는 전혀 사라질 의향이 없었다. 그의 연설을 들은 수많은 사람들은 즉각적으로 반응을 보였다. 미주리주 하원의원 듀이 쇼트(Dewey Short)는 "그는 인간의 몸을 입은 신의 형상을 보여준 사람이다. 우리는 방금 신의 목소리를 들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트루먼의 반응은 예상대로 무뚝뚝했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만 늘어놓고 있군." 에치슨은 어쨌든 맥아더가 자신의 자리에서 물러난다는 점을 명확히 했기 때문에 일단 마음이 놓였다. (942쪽)

 

  이 책의 뒷면에는 퓰리처상 수상작가 러셀 베이커가 쓴 발문이 붙어 있는데, 핼버스탬과 그의 저술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에 따르면, "헬버스탬은 50여 년 동안 아무리 뛰어난 소설가의 상상력도 현실 세계에서 벌어지는 엉뚱하고 기발하고 어처구니없는 사건만큼 독자를 사로잡을 수 없다고 확신하고 최고의 저널리스트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또 역사에는 항상 인간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에 인물연구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한국전쟁에 관한 이 책을 쓰기 위해 1962년에 베트남에서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미군과 얘기를 나눈 데서 착안하여 오랫동안 자료를 수집하고 면담하면서 집필하여 2007년에야 마지막 저서로 출간하게 되었다. 그러고는 22번째의 책을 준비하기 위해 미식축구선수를 인터뷰하려고 캘리포니아에 갔다가 교통사고로 운명하였다. 마지막까지 집필에 몰두한 진정한 작가였다."고 서술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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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고 지음_ 세계문학 속의 『한국전쟁』 38인의 작가로 읽다/ 2021. 6. 25. <와이겔리> 펴냄

  최종고崔鐘庫/ 경북 상주 출생, 서울대 법대 졸업,  독일 프라이부르크(Freiburg)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모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33년간 교수로 법사상사를 가르쳤다, 많은 학술서를 저술하여 2012년 삼일문화상 수상하였다. 2013년 정년 후에 문학은 인생의 대도大道라는 생각으로 시인으로, 수필가로 등단, 『괴테의 이름으로』, 『한국을 사랑한 세계작가들』(전3권) 등 시집과 문학서를 내었다.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고, <한국인물전기학회>, <한국펄벅연구회>를 운영하고 있다. <국제PEN한국본부>, <공간시낭독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