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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훈_민족의 가락에 불교를 싣다(발췌)/ 대구여사 <혈죽가>

검지 정숙자 2021. 4. 23. 03:03

 

    대구여사 「혈죽가」

    -⟪대한매일신보⟫ 1906. 7. 21.

 

 

  협실에 솟은 대는 충정공 혈적이라

  우로를 불식하고 방 중에 푸른 뜻은

  지금의 위국충심을 진각셰계 하고자

 

  충정의 굳은 절개 피를 맺어 대가 되어

  누상의 홀로 솟아 만민을 경동키는

  인생의 비여 잡쵸키로 독야청청 하리라

 

  충정공 곧은 절개 포은 선생 우회로다

  적교에 솟은 대도 선죽이라 유전커든

  하물며 방 중에 난 대야 일러 무삼 하리오

    -전문-

 

  민족의 가락에 불교를 싣다_현대시조의 태동기와 개척기(발췌) _ 권성훈/ 문학평론가, 경기대 국문과 교수

  1. 현대시조의 출발과 시대정신// 최초의 현대시조는 1906년 ⟪대한매일신보⟫에 발표된 대구여사大丘女史「혈죽가血竹歌」다.1) 「혈죽가」는 개화기 이후 최초의 활자 언어로 거듭난 근대 이행기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 시조사에서 이 시는 민족의 혈관에 면면히 흐르는 전통적 가치를 현대적 시조 양식에 담아내어 최초로 문명화된 매체 역할을 감당했다. 거기에 급속한 문화의 변화와 다양한 길항들로 시대적, 문명사적 혼란스러움을 극복하는 데 고유한 주체성과 시대적 정신성을 견인하고 있다.

   「혈죽가」를 현대시조의 효시로 보게 된 것은 2006년 7월 21일 있었던 한국시조시인협회의 현대시조 기념행사에서다. 이 시조가 발표된 날을 기점으로 시조시단은 현대시조가 100주년을 맞이했다고 선포하면서 '시조의 날'로 제정했다. 이로써 「혈죽가」이후의 시조는 노래가 아니라 문학으로서의 시조로 한국 현대시문학사를 다시 쓰게 된 것이다.

  「혈죽가」는 일제에 의해 조선 정부의 외교권을 무단으로 박탈하는 등 강제로 1905년 체결된 을사늑약을 비판하며 자결한 충정공 민영환(1861-1905, 44세)의 충정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작자가 대구여사로만 알려진 「혈죽가」는 민영환이죽은 방에서 피가 묻는 대나무가 솟아나 그 절개가 정몽주보다 높다는 것이다. 그만큼 조선으로부터 내려오는 선비정신의 기개와 민족의 걸기傑氣를 이 시가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로 인해 일제강점기 백성들에게 민족정신의 귀감이 되었고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데 본보기가 되었다. 그 후에도 이와 유사한 제목과 내용으로 이루어진 작가 불상의 시들이 3 · 1운동 전후해서 나타날 정도로 파장이 컸으며, 민족정신을 고취하기에 충분했다.

  (······)

  3수로 된 이 시 2수 초장 "충정의 굳은 절개 피를 맺어 대가 되어 있는" 혈죽을 중심으로 대나무 이미지가 각 수에서 펼쳐진다. 1수 중장 "방 중에 푸른 뜻" 2수 종장 "독야청청 하리라" 3수 중장 "석교에 솟은 대도 선죽"을 통해 다시 살아난 대나무 같은 충정한 민족의식과 역사의식을 발견할 수 있다. 실화를 배경으로 하는 이 시의 모티브는 나라와 백성의 치욕스러운 역사의 현장 앞에서 백성의 운명을 걱정하며 쓴 민영환의 유서에서 유래한다. 그가 유서에서 남긴 "살기를 바라는 자는 반드시 죽고 죽기를 각오하는 자는 삶을 얻나니(중략) 영환은 죽되 죽지 아니하고, 구천에서도 기필코 여러분을 돕기를 기약하니"라는 역사적 전언이 「혈죽가」를 있게 한 것이다. (p. 시 289-290/ 론 288-289 (······) 290)

 

  1) 대구여사 ⟪대한매일신보⟫ 제276호, 1906.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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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교평론』 2021-봄(85)호 <특별기획/ 현대시조와 불교 ①> 에서

  * 권성훈/ 문학평론가, 2013년 『작가세계』 평론 신인상 당선, 시집『밤은 밤을 열면서』외, 저서『시치료의 이론과 실제』 『현대시 미학 산책』 『현대시조의 도그마 너머』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