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中
시는 생명에 전체성을 개화시키는 것
함동선
나는 6.25전쟁 휴전협정이 조인된 다음 해(1954년) 서라벌 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했다. 서정주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시 실기' 강의실에서였다. 세속에 물들지 않은, 그래서 천진스러운 인상과 그 느리고 굵은 목소리의 한마디 한마디는 바로 한 편의 시를 생각하게 했다. 나는 10대 후반부터 보들레르의 시집 『파리의 우울』을 읽고 "악이 소용돌이치는 삶에서 사람들의 슬픔과 아픔의 친구가 된 보들레르에게 심취했다."는 모습이 근 70년이 지난 오늘에도 사진의 양화陽畵와 음화陰畫처럼 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p. 10)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 중 기억에 남는 첫째는, 옥스퍼드 사전에 "서정시抒情詩(lyric)는 시인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한 비교적 짧은 형식의 시라는 정의와 두 번째는 일본 사람들이 lyric을 '抒情詩'로 번역함으로써 마치 마치 정서만을 표현하는 것이라 인식하게 오역한 점과 세 번째, 시는 생명의 전체성을 풍요롭게 개회시켜야 한다"는 등이었다.
우리의 근대시사 현대시사을 보면, 대체로 낭만주의 시는 감정의 분출로 풍자, 아이러니 등 주지적 사고가 받쳐 주시 못했고 모더니즘 시는 감정의 광맥과 심장 뛰는 놀이가 없어 공허한 언어유희와 세계주의에 빠졌던 것이다.
시란 서로 다른 두 경향이 하나가 되어 생명의 전체성을 표현해야 한다. 풍요한 정신이란 이 두 경향의 한쪽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 둘을 통합해서 더 풍요롭게 개화시키는 정신인 것이다. (p.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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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당문학』 2021-하반기(12)호 <권두언>에서,
* 함동선/ 시인,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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