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에세이비평, 교감(交感)과 공감(共感)의 시 비평/ 전해수

검지 정숙자 2021. 8. 11. 00:28

 

    에세이비평, 교감交感과 공감共感의 시 비평

 

    전해수/ 문학평론가

 

 

  『공정한 시인의 사회』 신작시를 중심으로 월평月評을 게재하게 되었다. 이 글의 타이틀을 '월평'이라 하지 않고 '에세이비평'이라 한 이유는 전월 호에 발표된 신작시를 비평하는 나의 입장을 그대로 드러내기 위해서다. 이 글은 매우 주관적인 비평을 표방한다. '에세이비평'이라 하였으니, 비평으로서는 좀더 희미하고 좀 더 낮아질 수밖에 없겠으나,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느끼는 시와의 교감과 시적 공감의 일련들을 '에세이' 방식으로 읽어보고자 한다. 다만, 한 줄 변명처럼 '에세이비평'이라 하여 나약한 비판정신을 지닌 것이라 오해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실상 '에세이비평'의 명명은 2019년 '나의 비평의 순간'을 고백하는 자리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에세이'는 '미셀러니'와 분명 다른 것이다. 미욱하지만, 시의 면면을 읽되 '감동感動'의 '공유共有'를 위한 비평의 방식을 '에세이비평'외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핑계를 삼아 본다. 비평의 위기 혹은 전유專有된 편협한 글쓰기 방식은 무엇인가. '에세이비평'으로 인해 비평이 순간을 주관적 글쓰기로 호도糊塗한다 하더라도, 한 명의 평론가쯤은 2020년대 비평의 못난(?) 깃발 하나 세워도 무방하지 않을까. 비평정신은 예리한 비판과 치밀한 글쓰기 외에도 작가와 독자 사이에 친근한 '교두보橋頭堡'이면 안 되나. 이번 연재 글은 시와의 교감共感을 중심으로 순전히 내게로 걸어 들어오는 시를 소개하고자 한다. 시를 곁에 두고 즐기는 것, 공감共感을 위해 나와 교감交感을 나눈 시를 비평해보려 한다. 교감共感과 공감共感의 시가 내가 쓰려는 시 비평, '에세이비평'의 화두이다. (p. 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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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해수 문학평론집 『푸자의 언어』에서/  2021. 6. 29. <상상인>펴냄

  * 전해수/ 2005년 『문학선』으로 평론 부문 등단, 저서 『비평의 시그널』『메타모포시스 시학』『푸자의 언어』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