귓속말
허문영
가죽으로 남은 짐승이 울고 있다
얼마나 매를 맞았는지 온몸에 핏발이 섰다
한쪽 살점은 헤지고 다른 쪽 살결은 찢어졌다
말과 소와 염소와 노루와 개 같은 짐승들과 함께
함께 울던 오동나무 가락도 끊어졌다
되바라진 소리를 다스리던
북채도 사라졌고
약을 올리듯 변죽을 울려주던
고수鼓手도 보이지 않는다
흥을 돋궈주던 신들린 소리는 떠나갔다
누군가의 손바닥도 떠나버린 북
소리를 내지 못하고 바람결에 울기만 한다
쓰레기통 옆에 나뒹구는 두 개의 북
오랫동안 장단을 맞추었을 사랑하던 사이인 것 같아
나도 모르게 트렁크에 싣고 말았지만
때가 되면 버려진 듯
그렇게 사라지는 것도 옳은 것이라고
매일 같이 나의 한 복판腹板을 두드리는
그분이 귓속말을 했다.
-전문-
▶ 허문영 · 귓속말(발췌)_ 정복선/ 시인
악기 박물관에 가보면, 선사시대부터 악기를 만들었던 인류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새나 사람의 뼈로 만든 피리 종류가 있는가 하면, 몽골의 마두금처럼 그들의 삶에 있어서 가장 밀접한 동물의 머리 모양을 새겨서 그들만의 마음의 문양을 음악으로 울리게 한 것도 있고, 중국의 비파처럼 정교한 세공과 장식으로, 저절로 마음이 빛깔 나는 노래로 흘러나올 듯한 것도 있다. 원시시대 제의에서의 신성하나 거친 음악으로부터 서양의 교향곡을 거쳐 현재의 k-pop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빛과 어둠, 성聖과 속俗을 오가는 마음을 다스리는 데 있어서, 모든 악기와 그 음악에 빚을 졌다. 음악의 효용성은 곧 시의 효용성과도 통한다. 음악과 시를 좋아하는 태초의 인류가 있었기에 지금까지 진화해오지 않았겠는가.
이 세대가 버린 북(시)을 줍는 시인, 비록 k-pop의 세대에 의해 버림을 받을지라도 또 누군가는 그 "북"을 주워서 다시 진화의 궤도에 올릴 것임을 몸소 보여주는 것 같다. 시의 제목을 '귓속말'이라 한 것은 자성(神)의 목소리가 매일 자신의 "복판"을 두드리는 걸로 읽고 싶다. 우리의 몸도 하나의 "북"임을 암시하면서. (p. 시 231/ 론 23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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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복선 평론집 『호모 노마드의 시적 모험』에서/ 2021. 1. 15. <문학아카데미> 펴냄
* 정복선/ 전북 전주 출생, 1988년 『시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종이비행기가 내게 날아든다면』 『마음여행』 『여유당시편』 『시간의 칼은 녹슬고』 『맨발로 떠나는 사람』 등, 영한시선집 『Sand Reli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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