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시

디오티마에 대한 메논의 비탄(전문)/ 횔덜린

검지 정숙자 2021. 3. 11. 16:29

 

    디오티마에 대한 메논의 비탄

 

    횔덜린(Holderlin, Friedrich. 독일 1770-1843, 73세)

 

 

      1

나날이 나는 밖으로 나가 언제나 다른 그 무엇을 찾는다.

  셀 수 없이 많은 나날 나는 이 땅의 모든 길을 그들에게 물었다.

저기 서늘한 고원, 모든 그늘들을 나는 찾는다.

  또한 샘터도 찾는다. 영혼은 안식을 간청하며 아래 위를

헤맨다. 그처럼 화살에 맞은 들짐승도 숲 속으로 달아난다.

  여느 때 정오가 되면 어둠 속에서 편안히 쉬던 그 숲 속으로.

그러나 푸르른 터전도 그의 가슴을 낫게 하지 않는다.

  가시는 들짐승을 신음케 하고 졸음도 쫓아 내몰아 간다.

빛살의 따스함도 한밤의 서늘함도 효험이 없다.

  시냇물에 상처를 담그나 그 또한 헛된 일이다.

또한 대지가 그 기쁨에 찬 약초를 그에게 건네주나 헛된 것처럼

  부드러운 바람결도 솟구치는 핏줄기를 막을 길 없다. 

그렇게 사랑하는 이들이여! 나에게서도 그 들짐승의 모습을 보려 함인가,

  누구도 나의 머리에서 슬픈 꿈을 거두어 갈 수 없단 말인가?

 

      2

그렇다! 너희들 죽음의 신들이여! 너희들 그를 한 번 부여잡고

  제압당한 자 그를 단단히 붙잡아맨다면,

너희들 사악한 자들을 몸서리치는 밤으로 끌어내려 간다면

  달아나려고 하거나 너희들에게 화를 낸들 소용이 없는 일.

혹은 참을성 있게 두려운 속박 속에서 깃들면서

  미소와 함께 그대들로부터 정신 깨우는 노래 듣는 일도 헛된 일.

그렇다면 그대의 구원도 잊고 소리도 없이 잠들어라!

  허나 하나의 소리 있어 희망하면서 그대의 가슴에서 솟아 나온다.

여전히 그대 오 나의 영혼이여! 그 소리에 길들 수가 없다.

  하여 단단한 잔 가운데서 그대 꿈꾸고 있노라!

내 잔치를 맞이한 것 아니나, 머릿단에 화환을 두르고 싶다.

  허나 내 도대체 혼자가 아닌가? 그러나 한 우정 어린 것

멀리서부터 나에게 올 것이며 내 미소 지으며

  고통 가운데에서도 내 얼마나 행복한지를 놀라워할 것이다.

 

      3

사랑의 빛이여! 그대는 죽은 자들을 비추고 있구나, 너 황금의 빛이여!

  너희들 한밤중에 더욱 찬란했던 시절의 영상을 나에게 비추고 있는가?

사랑스러운 정원이여, 너희들 노을빛 든 산들

  어서 오너라, 그리고 임원의 말없는 작은 길들

천상의 행복을 증언하며 또한 너희들, 높은 저곳에서 바라다보는 별들

  한때 때때로 나에게 축복의 눈길을 던졌었노라!

너희들, 사랑스러운 것들 역시, 너희들 아름다운 오월의 아이들

  말없이 장미꽃들과 너희들 백합화들, 내 아직 때때로 이름 부르노라!

봄들은 충실하게 지나가고, 한 해는 다른 해를 빚어내며

  바꾸어 가고 싸워 나간다. 하여 저 드높이 시간은

필멸하는 인간의 머리를 지나가고 있다. 하나 축복의 눈길 앞에

  그리고 사랑하는 자들 앞에 다른 삶은 주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좌들의 나날과 연륜, 그 모든 것은

  디오티마여! 우리 주위에 마음속으로 영원히 결합되어 있는 탓이다.

 

      4

그러나 우리, 만족하게 어울려, 사랑하는 백조들

  호수 위에 쉬면서 혹은 파도에 몸을 맡기고

은빛 구름이 비추어 드는 물 속을 내려다보듯이

  또한 항해하는 자의 아래 천공의 푸르름이 물결치듯

그렇게 우리는 지상을 방랑했었다. 북풍, 그 사랑하는 자들의

  적대자는 비탄을 예비하면서 위협했고 가지에서는

나뭇잎 떨어지고 빗발치는 바람결에 날리었을지라도

  우리 평온하게 미소짓고 친밀한 대화 속에서

우리들 자신의 신을 함께 느꼈었다. 평화 가운데

  우리들 어린이 같고 환희하는 가운데 부른 하나의 영혼의 노래 속에서.

그러나 집은 이제 나에게 황폐하고 그들은 나의 눈을

  앗아갔으며 또한 그녀와 더불어 나 또한 잃었노라.

떄문에 내 망령처럼 방랑하며 어쩔 수 없이 살아가나니

남은 오랜 삶 내게 부질없을까 두렵도다.

 

      5

내 잔치하고자 한다, 하나 무엇을? 그리고 다른 이들과 더불어 노래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 신성 외롭게 나에겐 있지 않다.

이것을, 나는 아노라 나의 잘못을, 하나의 저주 그 때문에

  나의 동경을 병들게 하였고 내 시작한 곳으로 내동댕이쳐짐을.

하여 밤낮을 느낌도 없이 앉아 어린아이처럼 말없이

  다만 눈으로부터 때때로 차갑게 눈물이 스며 나옴을.

또한 들녘의 초목과 새들의 울음 소리 나를 슬프게 함을.

  왜냐하면 환히 더불어 그들 천국의 사자들이지만

이 떨리는 가슴속에서는 영감에 찬 태양도 밤 가운데에서의 빛처럼

  차갑게 그리고 결실도 없이 가물거리는 탓이다.

아! 또한 허무하고도 효험도 없이 마치 감옥의 벽인 양

  하늘은 허리를 굽게 하는 짐을 내 머리 위에 매달고 있구나!

 

      6

옛날은 달랐도다! 오 청춘이여, 내 기도도 그대를

  결코 되돌려 주지 않는가? 어떤 길도 나를 돌이켜 주지 않는가?

내 운명, 이전엔 반짝이는 눈빛으로 복된 식탁에 앉았으나

  이제 신들을 잃어버린 자들에게처럼

곧 배불러지고 취한 손님들도

   말을 잃고 만 것과 같은 것이라면, 이제 대기 아래

노래는 잠자고, 꽃 피어나는 대지 아래서도 노래 잠들리라.

  경이로운 힘이 그 침침한 자를 깨우쳐 되돌아오기를,

새롭게 푸르른 대지 위를 거닐가를 강요할 때까지.

  성스러운 숨결 신적으로 빛나는 형상을 꿰뚫어 흐르는 것은

축제 저절로 흥겨워지고 사랑의 밀물 스스로 움직이며

  천국을 힘껏 마시고 살아 있는 강물 소리내어 흐를 때,

그 아래 소리내며 한밤이 그 풍요로운 대가를 치르며,

  시내들로부터는 묻혀진 황금이 솟아 반짝일 때이리라.

 

      7

그러나 오 그대, 그대 앞에 주저앉아 있었던

  그 갈림길에서 위안하며 보다 아름다운 것을 가리켜 보였다.

그대 위대한 것을 보도록, 기쁘게 신들을 노래하도록 한 때

  침묵하는 가운데, 마치 신들처럼 말없이 영감에 차 나에게 가리켰다.

신의 아이여! 그대 옛처럼 나에게 모습 보이고

  옛처럼 다시금 드높은 일들을 나에게 이르고 있는가?

보라! 아직도 내 영혼 부끄러워하는 고귀한 시절을 생각할 때

  내 그대 앞에서 울며 비탄치 않을 수 없도다.

왜냐하면 그렇게 오랫동안 이 지상의 메마른 길들에서

  그대에 익숙해져 미망 가운데 내 그대를 찾았기 때문이다.

환희의 수호신이여! 그러나 우리 예감하면서 우리의 주위에 반짝이는 저녁을 바라본 이래

  모든 것은 헛되었고 해는 거듭 흘렀다.

 

      8

그대만을, 그대 자신의 빛이 오 半神女여! 빛 안에 지키며

  그대의 참을성은, 오 착한 이여, 그대를 지킨다.

또한 그대 결코 외롭지 않다. 그대 피어나고 연륜의 장미 아래

  그대 쉬는 곳에 같이 어울리는 자 많고도 넘친다.

또한 아버지, 부드럽게 숨쉬는 뮤즈를 통해

  감미로운 자장가를 그대에게 보내신다.

그렇다! 그녀는 그 자체이다! 아직 그녀의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고요히 움직이면서 옛말처럼 아테네의 여인 내 눈앞에 어리고 있다.

또한 친밀한 정신이여! 쾌활하게 생각하는 그 이마에서부터

  축복하며 확실하게 그대의 빛살 필멸하는 자 가운데 떨어진다.

그처럼 그대 나에게 증언하고 나에게 이르기를

  다른 이들 믿지 않을지라도 내 다른 이들에 이를 반복하라고,

또 이르기를 근심과 분노보다 환희가 더 무궁하며

  황금빛 날은 나날이 종멸에 이르도록 빛나리라 말한다.

 

      9

그대들 천상의 것들이여! 그러나 나는 감사하려 한다. 또한 마침내

  가벼운 가슴으로 기인의 기도는 다시 숨쉰다.

또한 너희들과 함께 햇빛 비치는 산정에 섰을 때

  생기에 차 신전으로부터 하나의 신은 내게 말을 건넨다.

내 또한 살고 지고! 벌써 초록빛이 감돈다! 성스러운 현금에서인 양

  아폴론의 은빛 신들로부터 외치는 소리 들린다!

오라! 꿈과 같았도다! 피 흘리는 날개는

  이제 다 나았고, 희망들도 회춘하여 생동한다.

위대함을 찾아내는 일 많고, 아직도 찾을 것 많이 남아 있도다. 또한

  그렇게 사랑했던 자 신들에게 이르는 길을 가고, 가야만 하리라.

그대들 축복의 시간도 우리와 함께 가며

  그대 진지하고 청정한 자들이여! 오 멈추어라, 성스러운 예감

그대 경건한 소망들이여! 사랑하는 자들 곁에

  기꺼이 머무는 감동과 모든 정령들이여:

우리 공동의 땅 위에 설 때까지 그렇게 우리와 함께 머무르라.

  그 곳 축복받은 자 모두 기꺼이 되돌아오는 곳

거기 독수리들, 행성들, 아버지의 사자들 있고

  그 곳 우리 인간들 활짝 피어나 정원에서 어울리고

거기 노래들은 참되고 봄들도 아름다우며

  새롭게 우리 영혼의 연륜 시작되는 그 곳에 설 때까지.

      -전문-

 

 

  궁핍 속에서프랑크푸르트의 은행가인 공타르 가의 교사가 되어그 집의 주부인 주제테의 그리스적인 전아典雅한 아름다움과 교양에 매혹되어 사랑과 이해를 깊이 하기에 이르렀다. 사랑하는 사람의 빛과 그림자와 순간적인 행복과 이별의 슬픔, 인생의 괴로움 등이 그의 시상에 가장 중요한 깊이를 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플라톤의 「향연饗宴」에서 따온 '디오티마'의 이름을 그녀에게 붙여 주고 이 디오티마의 체험이 시인을 위대하게 이끌어갔다. 디오티마 체험의 파국 후 스위스와 프랑스의 가정교사로 전전했으나 이것도 짧은 시간에 불과하였다. 1796년 9월말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온 그는 2년 뒤인 1798년 9월 프랑크푸르트를 떠나 홈브르크로 거처를 옮긴다. 그는 이 시절에(1798년~1800년 6월까지) 많은 작품을 썼는데, 비극 「엠페도클레스의 죽음」, 세 편의 중요한 단편적 논고들 「종교론」 「소멸 가운데의 생성」 「시정신의 수행 방법론」이 이때 쓰여졌다. 또한 소설 『휘페리온』 제2권이 출간되기도 했다. 홈브르크에서의 마지막 기간에는 그리스 시인 핀다르에 열중, 횔덜린은 핀다르를 '문학 예술의 총화'라 칭하고 핀다르의 작품을 독일어로 옮긴 바, 그것은 출판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핀다르의 시를 통해서 표상의 율동미와 언어 구사의 신비를 추적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것은 그의 소위 '조국적 찬가'에 대한 가장 중요한 예비 작업으로 판단된다.

  1800년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상인 린다우어 가에서 여름과 가을을 별다른 어려움 없이 지내면서 「디오티마에 대한 메논의 비탄」 「방랑자」 「빵과 포도주」, 그리고 1801년에까지 이어서 「귀향」 「아르키페라구스」를 집필하게 된다.

  (···) 

  그리고 횔덜린의 시를 말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시 쓰기 작업의 엄밀성이다. 횔덜린에게 있어서 시는 길들여지지 않은 감명과 도취, 즉흥적인 감정의 토로와는 전혀 다른 그 무엇이다. 그것은 오히려 구성의 비길 바 없는 확실성과 정확성, 고통스러우리 만큼 정밀을 요하는 작업이다. 아름다움은 바라다보는 자를 매혹시키지만, 한층 더 매혹된 자를 관찰과 분석으로 이끌어가듯 횔덜린의 시들은 무한히 파헤치게 만드는 구성의 원리가 있다.

  그의 시들에는 '법칙적 계산'이 깔려 있다. 그에게 있어서 시 쓰기는 일종의 공예이며 어떻게 보면 일종의 기술이다. 그리스인들이 말했듯이 그것은 'mechane'의 일종이다. 시쓰기에 대한 대한 현대적인 사고  엘리어트의 말대로 시는 감동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예술적 과정의 강렬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사고를 횔덜린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정신착란의 시인을 30년 이상 충실하게 돌보았던 목수 짐머가 교회당에 쓸 성구聖具들을 조심스럽게 짜 맞추었듯이 횔덜린 역시 그렇게 정밀하게, 그리고 엄격하게 시 쓰기에 임했다. (p. 시 167-172/ 론 162-163 (···) 165-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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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현실』 2020-겨울(82)호 <집중 재조명/ 2000년 시현실 통권 5호 재수록> 에서

  * 본지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