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만 볼 수 있다면
헬렌 켈러(Helen Adams Keller, 1880-1968, 88세)
만일 내게 유일한 소원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죽기 전에 꼭 사흘 동안만
눈을 뜨고 세상을 보는 것이다.
만약 내가 눈을 뜰 수만 있다면,
나는 내 눈을 뜨는 첫 순간
나를 이만큼이나 가르쳐준 내 스승
앤 설리반을 찾아갈 것이다.
지금까지 손끝으로 만져 익숙해진 그 인자한 얼굴,
그리고 그 아름다운 몸매를 몇 시간이고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 모습을
내 마음 깊숙이 간직해둘 것이다.
그 다음엔 내 친구들을 찾아갈 것이며
그 다음엔 들로 산으로 산보를 나가리라
바람에 나폴거리는 아름다운 잎사귀들,
들에 핀 예쁜 꽃들과 저녁이 되면
석양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노을을 보고 싶다.
다음날 일어나면
새벽에는 먼동이 트는 웅장한 광경을,
아침에는 메트로폴리탄에 있는 박물관을
그리고 저녁에는 보석 같은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또 하루를 보낼 것이다.
마지막 날에는 일찍 큰길에 나가
출근하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을
아침에는 오페라하우스
오후에는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고 싶다.
어느덧 저녁이 되면 건물의 숲을 이루고 있는
도시 한복판으로 걸어나가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쇼윈도에 진열된
아름다운 물건들을 보면서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눈을 감아야 할 마지막 순간,
사흘 동안이나마 눈으로 볼 수 있게 해 주신
나의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영원히 암흑의 세계로 돌아가리라.
-전문, (p. 45-46)
해설> 한 문장: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삶은 축복입니다. 둘러보면 안쓰러운 삶도 많습니다. 눈길이 미치지 못하는 데서 삶의 그늘이 생깁니다. 어떤 것을 보느냐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보느냐가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헬런 켈러는 삼중의 장애를 겪으면서도 "행복의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 그러나 우리는 닫힌 문을 오랫동안 보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열려 있는 문을 보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녀는 이룰 수 없는 <환한 세상의 3일 계획표>를 세우면서 우리를 위해 열린 문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 것인가를 일깨워 줍니다. 그녀는 손이 아니라 마음의 수틀에 한 땀 한 땀 이렇게 기록합니다. 눈으로 보는 평범한 일상이 이토록 슬프고 아름답고 간절한 것인가를 돌아보게 됩니다. (p. 4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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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진용 산문집 『글자 기행록』에서/ 2020. 12. 20. <시로여는세상> 펴냄
* 우진용/ 2003년 『시사사』로 등단, 시집 『흔痕』 『회문回文』 등, 교육서 『한자어에 숨은 공부 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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