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지 안을 배회하다
찰스 부코스키 : 황소연 옮김
아버지의 그림자에 붙잡혀
맥없는 추측으로 시간을 보내자니 죽을 맛이다.
카페 밖 인도는
종일 외롭군.
나를 쳐다보는 내 고양이가 저놈 뭐지 하는 눈치고
그걸 쳐다보는 나도 저놈 뭐지
싶어
재밌다······
40년 전 유명 잡지 기사 두 편을 읽어 보니
당시 별로였던 글은
역시
지금 봐도
별로다.
이 작가들은 모두 살아남지 못했다.
가끔은 어딘가에서
이상한 정의가
실현되고는 한다.
가끔은
아니기도 하고······
중학교는 앞으로 다가올 기나긴 지옥의
첫 예고편이었다.
부모님 못지않은 끔찍한 존재들과의
조우.
상상조차 못했던
일들······
학사 장교 때 총기 조작법으로
상을 탔지만
타든 말든
관심 없었다.
아무 것도 관심 없었다.
여자조차 시시한 게임 같아
쫓을 마음이 들지 않았다
하찮은 데 목숨 걸기 싫었다.
밤에 가끔씩 잠들기 전에
뭐 하며 살까, 무엇이 될까
생각했다.
은행 강도, 술꾼, 거렁뱅이, 머저리, 평범한
노동자.
내가 정박한 곳은 평범한 머저리 노동자.
그나마 다른 대안보다 편할 것
같아서······
죽도록 굶주릴 때 좋은 건
마침내 음식을
먹게 되면
세상에 그리 아름답고 맛있고 마법 같은 일은
또 없다는 것이다.
평생 하루 세 끼 꼬박꼬박 먹는 자들은
절대 모르지
음식의
참맛을······
사람들은 참 이상해, 사소한 일에는 늘
발끈하면서
정작
삶을 낭비하는
큰 문제는
잘 모르니
말이지······
알고 보니 작가들은 대부분
편을 갈랐다.
학파, 기득권, 이론이라는 게
있었다.
무리를 이뤄 서로
싸웠다.
문단 내 정치가 있었다.
순응과 쓸쓸함이
있었다.
글쓰기란 혼자 하는 일인 줄
알았는데.
그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동물은 천국이냐 지옥이냐
걱정하지 않는다.
그건 나도
그렇다.
그래서 우리가
사이가
좋은 거겠지······
외로운 사람들이 다가오면 나는
다른 이들이 왜 그들을 떠났는지
그 이유를 금세
알게 된다.
혼자 남는 것은
내겐
축복인데
그들에겐
공포······
셀린* 참 가엾은 양반.
그의 작품은 하나.
다른 것들은 잊어라.
참 대단한 책 아닌가,
『밤 끝으로의 여행』**
그 책으로
그는 전부를 뺴앗기고
파란의 안갯속을
유영하는
천덕꾸러기
괴짜로
전락했다······
미합중국은 참
이상한 곳이다.
미국은 1970년에 이미
정점을 쳤고
이후 지금까지
해마다
3년씩
퇴보해
1989년에는
돌아가는 형편이
꼬라지가
1930년이었다.
굳이 영화관에 가서
공포 영화를 볼 필요가
없지 뭔가.
내가 원고를 부치는 우체국 옆에
정신병원이 하나
있다.
나는 우체국 앞에 주차하지 않고
꼭 그 정신병원 앞에 주차하고
걸어 내려간다.
그 정신병원을 지난다.
몇몇 양호한 환자들은 포치에 나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
비둘기처럼 거기
앉아 있다.
나는 그들에게 형제애를
느끼지만
그들과 함께 앉아 있지는 않는다.
걸어가서 내 작품을
1종 우편물 칸에 떨어뜨린다.
나는 무슨 일이든
똑바로 해야 한다.
돌아갈 때 그들을 쳐다보는 둥
마는 둥 한다.
차에 올라타 차를 몰고
떠난다.
나는 차를 몰아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집을 향해 쭉 차를
몬다.
진입로를 따라 올라오는데 문득
지금 뭐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차에서 내리자
고양이 다섯 놈 중 한 놈이
다가온다. 참으로 멋진
녀석.
손을 아래로 뻗어 녀석을
만져 본다.
기분이 좋아진다.
지금 나는 해야 할 일을 정확히
하고 있다.
-전문-
* 루이 페르디낭 셀린. 1894-1961(67세). 프랑스의 소설가. 의사로 생활하던 중 비속어를 포함한 노골적인 내용의 『밤 끝으로의 여행』을 발표해 프랑스 문단에 충격을 주었다. 또 반유대적 입장을 고수해 2차 세계대전 후에는 전범작가로 낙인 찍혀 덴마크로 망명했다가 1951년 특사로 귀국하지만 불우하게 살며 여생을 마감했다.
** 『Voyage au bout de la nuit』(1932) 고통과 절망 속에서 생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 낸 풍자 소설. 여러 직업을 전전하는 주인공이 기존 체제를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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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 1판 1쇄 2019. 2. 22. & 1판 4쇄 2020. 5. 6. <민음사> 펴냄
* 찰스 부코스키(Charles Bukowski, 1920-1944, 74세) 현대 미국과 유럽 문단에서 큰 영향력을 끼친 시인이자 소설가. 미군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하여 로스앤젤레스에서 성장했는데, 아버지의 잦은 구타로 인한 고통을 덜기 위해 열세 살 때부터 술을 마셨다고 한다. 엄청난 독서가였고, 오랫동안 하급 노동자로 일하며 미국 전역을 유랑했다. 심각한 궤양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생환한 후인 서른다섯 살에 시를 쓰기 시작했다. 우체국 직원으로 일하면서 틈틈이 시와 칼럼을 잡지와 신문에 발표했다. 1969년 마흔아홉 살에 비로소 '블랙 스패로 프레스'의 제안을 받아 전업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일흔세 살의 나이에 백혈병으로 사망할 때까지, 평생 예순 권이 넘는 소설과 시집, 평론을 발표했다. 이 가운데 시집은 사후 출판까지 포함하여 서른세 권에 이른다. 시인이 영향을 받은 작가들 중에는 이백과 두보, 헨리 밀러, D. H 로렌스, 도스토예프스키, 알베르 카뮈, 크누트 함순,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이 있다. 또 영화감독 장뤼크 고다르, 마르코 페레리, 록밴드 '레드 핫 칠리 페퍼스' 등의 사랑을 받았으며, 미국에서 그의 책들은 서점에서 가장 많이 도난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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