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직忠直하고 고결高潔한 밤(부분)
Faithful and Virtuous Night
루이스 그릭/ 양균원 옮김
다음 날 다시 말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이모가 너무나 기뻐했지요
내 행복이 그녀에게
아예 넘어가버린 듯했어요, 그렇지만 그녀에게는 행복이
더 많이 필요했지요, 양육할 아이가 둘이나 되었으니까요.
난 생각에 잠기는 짓에 만족했어요.
색연필을 가지고 놀면서 여러 날을 보냈지요.
(어둔 색들이 곧 바닥나버렸어요)
그렇지만 내가 보았던 것은, 이모에게 말했던 대로,
세상에 대한 사실적 설명이기보다
내 자신의 공허를 뚫고 지나간 뒤에 발생하는
그 변형의 환상에 더 가까웠지요.
봄 세상 같은 어떤 것이라고, 난 말했어요.
세상에 빠져 있지 않을 때는
어머니의 모습을 그렸어요,
이를 위해 이모가 내 요청에 따라
플라타너스 나뭇가지를 들고
자세를 취했어요.
내 침묵의 수수께끼에 대해 말하자면
영혼의 퇴행에 의해서보다는 그 귀환에 의해서
더욱 어쩔 줄 몰라 했던 거죠, 왜냐하면
영혼이 빈손으로 귀환했으니까요
이 영혼, 그게 얼마나 깊은지,
백화점에서 길을 잃고
엄마를 찾는 아이 같았어요
어쩌면 영혼은
몇 분가량만 심저를 탐색할 수 있는,
탱크의 공기가 딱 그만큼만 주어진 잠수부 같은 거예요
그 후엔 폐가 그를 돌려보내는 거죠.
하지만 난 확신했어요, 폐에 저항하는 뭔가,
아마도 죽음에 대한 동경 같은 어떤 것이 있다고
(난 영혼이라는 단어를 한 타협으로써 사용하지요). (15-17)
▶ 루이스 그릭, 한국 서정시에 건네는 질문(발췌)_양균원/ 시인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그릭은 1943년생 미국 여성 시인이다. 국내 독자에게는 생소하지만 그릭은 미국 내에서 퓰리처상, 전미도서상, 볼링겐상 등을 수상했고 미국 계관시인을 지낸 바 있어서 상당히 잘 알려진 시인이다. 노벨문학상은 시집이 아니라 시인에게 주어진다. 시인의 전 생애, 그 모든 작품 활동에 대해 평가가 이뤄지는 상이다. 계간지 『포지션』의 지면에서는 그릭의 2014년도 전미도서상 수상집 『충직忠直하고 고결高潔한 밤』(Faithful and Virtuous Night)에 주목한다. 시인을 전반적으로 요약하기보다는 수상 시집 중에서도 표제시 한 편에 집중하여 완역한다. (p. 275)
화자에게는 죽음을 지향하는 욕구가 있다. 폐는 공기의 결핍을 감지하는 손간 몸에게 물 위로 돌아갈 것을 명령한다. 하지만 화자는 그 폐의 명령에 저항하면서 더 깊이 가라앉으려는 충동 속에 있다. 사람들에게 영혼은 존재의 핵심이지만 화자의 영혼은 죽음에 이끌리고 있다. "타협"의 영혼은 허용된 산소로는 그 심저에 도달할 수 없는 어둠의 깊이를 지니고 있다. 화자는 죽음의 유혹에 이끌리면서 또한 저항하고 있다. 양쪽의 경계에 처하여 그 영혼은 죽을 수도 살 수도 없는 "타협"을 이루고 있다. 영혼의 심저로 내려가지만 가장 깊은 곳까지 가라앉지 못하고 돌아올 때는 그저 빈손이다. 내려가는 퇴행보다 올라오는 귀환이 더 아프고 위험할 수 있다. (p. 시 290-191/ 론 291-292)
■ 인용 문헌 Louise Gluck. Faithful and Virtuous Night. New York: Farrar, Straus and Giroux, 2014
* 블로그주: p. 273~296 중 '루이스 그릭' 소개 부분과 시 인용 부분의 해설만을 여기 수록함. 전문은 책에서 일독 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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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ITION 포지션』 2020-겨울호 <POSITION 9 해외 현대시 읽기> 에서
* 양균원/ 1981년 ⟪광주일보⟫ & 2004년 『서정시학』으로 등단, 시집 『허공에 줄을 긋다』 『딱따구리에게는 두통이 없다』 『집밥의 왕자』, 연구서 『1990년대 미국시의 경향』 『욕망의 고삐를 늦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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