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외 2편
찰스 부코스키 : 황소연 옮김
헤아릴
수
없는
절망
불만
환멸을
겪어야
나오는
것이
한 줌의
좋은
시.
시는
말이지
아무나
쓰는
것도
아니지만
아무나
읽는
것도
아니라네
-전문-
------------------
이번에 비하면
그땐 좋았지, 한밤의 천둥소리, 광장에서의
죽음.
신발에 광을 내야겠다.
타자기는 묵묵부답이다.
침대 뒤
벽에
몸을 기대고
펜으로
낡은 노란 공책에
이 글을 끼적인다.
헤밍웨이는 더 이상 글이
나오지 않을 거라고
말하고
총구를 입에
넣었다.
글을 쓰지 않는 것도 나쁘지만
나오지 않는 글을
억지로 쓰려는 건
더 나쁘다.
이보게들, 나도 사정이 있소이다.
결핵에 걸렸단 말이오.
항생제에 뇌가
무뎌졌다 이거요.
사람들은 내게
다시 글을 쓰게 될 거라
안심시킨다. "전보다
더 나은 글을 쓰게 될 거예요."
그러면 다행인데
타자기는 묵묵무답
나를 빤히
쳐다만 본다.
그간 이삼 주
간격으로
우편함에 날아드는
펜레터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가
틀림없단다.
하지만
타자기는 묵묵부답
나를 빤히
쳐다만 보는 걸······
내 생애
가장 요상한
시절이
또 찾아왔나.
래저러스*처럼 한 편
써내야 할 텐데
신발에 광내는 것조차
할 수가
없네그려.
-전문-
* 엠마 래저러스(1849-1887, 38세)/ 미국의 여류 시인. 그녀의 시 「새로운 거인(The New Colossus)」의 마지막 5행은 뉴욕 자유의 여신상 받침대에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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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행위
명성이나
돈이 아닌
바닥에 깨진 달걀을 위해
7월 5일을 위해
수조 안 물고기를 위해
9호실 영감을 위해
울타리 위 고양이를 위해
당신 자신을 위해
계속 쳐내야 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매력은 퇴색하니까
젊다면 더 수월하겠지
어쩌다 보면 누구나
정상에 오를 수 있다
관건은
일관성
계속 굴러가게 하는 것이면
무엇인들 어떠리
죽음의 여신 앞에서 춤추는 것이
인생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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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 1판 1쇄 2019. 2. 22. & 1판 4쇄 2020. 5. 6. <민음사> 펴냄
* 찰스 부코스키(Charles Bukowski, 1920-1944, 74세) 현대 미국과 유럽 문단에서 큰 영향력을 끼친 시인이자 소설가. 미군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하여 로스앤젤레스에서 성장했는데, 아버지의 잦은 구타로 인한 고통을 덜기 위해 열세 살 때부터 술을 마셨다고 한다. 엄청난 독서가였고, 오랫동안 하급 노동자로 일하며 미국 전역을 유랑했다. 심각한 궤양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생환한 후인 서른다섯 살에 시를 쓰기 시작했다. 우체국 직원으로 일하면서 틈틈이 시와 칼럼을 잡지와 신문에 발표했다. 1969년 마흔아홉 살에 비로소 '블랙 스패로 프레스'의 제안을 받아 전업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일흔세 살의 나이에 백혈병으로 사망할 때까지, 평생 예순 권이 넘는 소설과 시집, 평론을 발표했다. 이 가운데 시집은 사후 출판까지 포함하여 서른세 권에 이른다. 시인이 영향을 받은 작가들 중에는 이백과 두보, 헨리 밀러, D. H 로렌스, 도스토예프스키, 알베르 카뮈, 크누트 함순,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이 있다. 또 영화감독 장뤼크 고다르, 마르코 페레리, 록밴드 '레드 핫 칠리 페퍼스' 등의 사랑을 받았으며, 미국에서 그의 책들은 서점에서 가장 많이 도난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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