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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제_『쿼런틴』「코로나 이전과 이후의 세계」(부분)

검지 정숙자 2020. 10. 5. 02:20

<코로나 이전과 이후의 세계> 中

 

    기후 변화와 인수공통감염병, 다음 펜데믹

 

    김어제/ 프리랜서

 

 

  8월이면 으레 찜통이어야 할 한국에 40일 넘게 장마가 지속되고 있다. 8월 초에 이런 날씨는 처음 본다. 그 탓에 정부가 자원 분배를 할 새도 없이 전국이 동시에 물에 잠겼다. 해외도 다를 바 없다. 중국, 일본, 미국, 인도 할 것 없이 모두 물에 잠겨 있다. 한 트위터 유저가 그레타 툰베리(스웨덴의 환경운동가, 2003~)를 두고 "노아에 버금가는 신의 메신저"라고 표현했는데,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러한 기후 변화도, 지카바이러스도, 아마 코로나19와 그 다음에 올 전염병 바이러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간과 동물 모두 걸릴 수 있는 인수공통감염병들은 결국 인간이 자연을 무리하게 침범한 결과이다. 효율성과 이윤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이 시대는, 사람의 손이 닿은 적 없는 땅을 내버려 두지 못한다.

 

 

  사람이 자연과 직접 부딪히는 곳에서 동물에게는 별 큰 문제가 아니었을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넘어와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되는 사건을 '스필오버 이벤트(SILLOVER EVENT)'라고 한다. 인수공통감염병이 생기려면 해당 병원체에 감염된 특정 동물을 사람이 만나야 한다. 그리고 지난 50년간 인수공통감염병은 끊임없이 증가해왔다. 숲을 파괴하고 행해지는 농업, 목축업, 그로 인해 일어나는 야생동물의 생태 변화가 주 원인이었다.

  아직 코로나19가 동물에게서 인간으로 건너온 정확한 이유나 시점을 알지는 못하지만, 각종 야생 동물과 가축의 피, 분변이 한데 섞여 있는 중국 우한의 전통 생물 시장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야생 동물을 먹는 것만 위험할까?

  전 세계에서 야생 동물을 먹는다. 서아프리카 밀림 깊숙한 곳, 새로 개발한 광산이나 농지와 밀림의 경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사육된 동물의 고기를 구할 길이 없어 야생 동물 고기를 섭취한다, 아직 목축업이 발달하지 못한 곳들 또한 수렵으로 고기를 구한다.

  한국의 보신 문화도 한 축을 담당한다. 뱀을 잡아 술을 담그거나 사슴 피, 곰의 쓸개즙을 뽑아 먹는 것뿐만 아니라 법의 규제 안에 있지 않아 비위생적으로 사육되고 도살된 개고기를 먹는 것 등도 충분히 스필오버 이벤트가 벌어지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 이 이벤트는 살아 있는 동물과 접촉할 때 감염이 일어날 확률이 가장 높다. 살아 있는 개, 토끼, 꿩, 닭, 오리, 자라 등을 그 자리에서 직접 잡아주기도 하는 성남 모란시장은 최적의 환경이다.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중국인들이 박쥐탕을 먹는다며 야만적이라고 온갖 난리를 치지만, 아직도 꽤 많은 수의 미국인이 사냥으로 고기를 얻는다. 사슴, 칠면조부터 온갖 중대형 철새와 청설모 같은 설치류까지 잡아 집에서 손질해 먹는다. 어떻게 잡는지는 모르겠지만 곰도 잡아먹는다고 한다. 뉴욕에서도 버팔로나 바이슨 고기로 만든 햄버거를 맛볼 수 있다. 실제로 코로나19의 유행으로 많은 육류 가공 공장이 문을 닫아 육류 공급이 불안정해지자, 많은 미국인들이 직접 고기를 구해 먹기 위해 엽총을 들고 사냥에 나서고 있다.

  놀랍게도 미국 뉴욕 한복판에도 우한의 생물 시장 비슷한 것이 있다. 고향에서처럼 갓 잡은 신선한 고기를 직접 먹고 싶은 아시아인들이 운영하는 곳, 할랄이나 코셔 도축법을 사용하는 곳 등이 뉴욕 시내에서 버젓이 운영 중이다. 밀폐된 건물 안에서 도축되는 동물 고기들은 바로 근처 슈퍼마켓에서 팔린다. 다행히 동물권 운동가뿐만 아니라 코로나19 이후로 이곳의 위생을 걱정한 사람들이 시위를 하기 시작했고,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관련하여 새로운 법안이 상정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 중 몇 군데를 우연찮게 목격한 적이 있다. 첫 번째로 본 곳은 플러싱과 코로나의 경계에 있는 닭 도축장이었다. 집에 돌아가려고 버스 장류장을 찾아 걷고 있었는데, 어딘가에서 지독한 악취가 났다. 도시에서는 절대 맡을 수 없는 냄새였다. 간판도 없는 한 건물의 반쯤 열린 문 사이로 피와 분변, 내장이 섞인 끔찍한 색의 액체가 흘러나와 하수구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구역질이 났다. 

  도대체 이게 뭔가 싶어서 멀리서나마 문틈으로 살펴봤는데, 눈앞에 살면서 처음 보는 광경이 펼쳐졌다. 검은 벼슬을 가진 커다란 흰 닭들이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만큼 닭장에 가득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닭장들이 천장까지 꽉 차곡차곡 차 있었다. 더러운 장화와 도축용 앞치마를 착용한 사람들이 별다른 보호 장비 없이 닭을 도축하고 있었다. 깃털과 피, 좀 전까지 살아 있던 닭의 일부였던 고기 부스러기들이 날아다녔다.

  도시 안에서 이런 시설이 적절한 하수 설비 없이 운용 가능한 건지 의심부터 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문화적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부적절하고 비위생적인 시설들이 방치되고 있었다. 위생 조건에 한참 미달일 것 같은데, 어째서 계속 유지될 수 있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두 번째 조우는 아스토리아의 할랄 도축장이었다. 육중한 철문 앞에 거대한 냉동 트레일러가 서 있었는데, 철문 아래로 흘러나오는 피와 도축 부산물들이 어디서 많이 본 것들이었다.

  한바탕 비가 쏟아진 직후라 피는 대부분 하수구로 흘러내려 갔지만, 그 비가 씻어낸 자리에는 닭의 온갖 부위가 널려 있었다. 피가 반쯤 씻겨나가 더욱 그로테스크한 모습의 닭 머리 무더기에 크고 번쩍이는 파리들이 윙윙거리며 달려들었다. 파리는 닭의 눈을 핥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런 노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붉은 벼슬이 반쯤 찢겨나가고, 피에 젖은 닭의 머리는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이런 비위생적인 시설에서는 뭐를 도축하든 바람직하지 않지만, 도축뿐만 아니라 양이나 닭, 염소 등 온갖 생물들을 한데 몰아넣고 기르기까지 한다고 한다. 돼지독감이라고도 불리는 신종 플루의 발생설 중 하나는 독감에 걸린 사람과 조류가 동시에 한 돼지를 감염시켜 조류와 인간의 바이러스가 조합되었다는 것이다.

 

 

  신종 플루는 멕시코에서 시작되었다. 지카바이러스는 브라질에서, 스페인 독감은 이름과 다르게 미국에서 발생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한국형 출혈열이라고 불렸던, 한타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유행성 · 신증후군출혈열도 있다.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들쥐가 많은 중국이나 내몽골에서나 발생할 것만 같은 흑사병을 놀랍게도 인도나 동남아시아 일부 지역, 중앙아시아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남미, 미국에서도 사람과 동물을 가리지 않고 매년 꾸준하게 발병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런 위험은 중국만의 것이 아니다.

 

 

  얼마 전까지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었으나 이제는 연구 결과들이 뒷받침해주는 사실이 있다. 인간은, 그중에서도 개발된 국가에 사는 사람들은 너무 많이 먹는다. 특히 소고기는 이산화탄소 배출에 아주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다른 우제류(소, 사슴, 돼지, 양 따위의 발굽이 짝수인 포유류에 속한 목) 생물과 다르게 소는 특정 풀들만 먹는다. 그래서 소를 기르려면 숲을 싹 밀고 초지부터 만들어야 한다. 소를 대량으로 키우는 것은 지구의 탄소 고정에 도움이 안 된다는 말이다. 도축, 운반, 유통 문제는 사실 소가 필요로 하는 초지를 위해 파괴되는 숲과 소가 먹어 치우는 사료들을 키우느라 발생되는 어마어마한 이산화탄소에 비하면 발톱의 때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실제로 소고기는 2등인 양고기와 단위 무게당 탄소 배출량이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지구 온난화에 아주 크게 기여하는 식재료라 할 수 있다.

  소고기를 풍족하게 먹는 것을 부의 상징으로 여기고, 더 많은 사람들이 소를 먹을 수 있도록 목축업에 힘을 쓰고 있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미국은 정도가 심하다. 동아프리카는 물에 잠기고 호주는 가뭄과 화재에 시달리고 있는데, 꼭 소고기를 그렇게 많이 먹어야 하나?

  원인을 안다고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갑자기 뿅하고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고기 문제는 비교적 해결이 쉽다. 좀 적게 먹으면 된다. 모든 사람이 채식주의자가 될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동물성 재료의 섭취를 줄이면 건강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는 환경 파괴와 기후 변화가 예정되어 있는 다음 펜데믹과 직결된다는 것을 안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소소하지만 영향력 큰 행동이다.

  몇 년 안에 궁극적인 해법이 나오면 좋겠지만, 인간이 대단한 활동을 해서 지구를 100년 전으로 돌리는 것은 현재 기술로는 불가능하다. 현재의 지구를 보존하고 자연스레 회복하도록 돕는 것만이 우리의 삶의 터전을 지킬 유일한 방법이다. ▩ (P. 274-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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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어제 지음/ 코로나19와의 사투와 생존 과정을 새긴 40일간의 기록 쿼런틴에서/ 2020. 9. 7. <마음의숲> 발행

 * 김어제/ 한양대학교 건축공학부를 졸업했다. 사진을 하는 배우자와 뉴욕에 살고 있다. 평생 인터넷에 글을 남겨왔지만, 책은 예정에 없었다. '어제'라는 이름으로 브런치에 음식과 요리에 관한 글을 쓴다. 가리는 것은 많고 좋아하는 것은 말하지 않는 편이다. 아프리카 서부의 아름다운 섬, 프라이아에 여행을 가고 싶은 오랜 소망은 이제 이루어지지 않을 확률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