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재와 실제
정숙자
알 수 없는 어느 공간에서, 나는
어둠과 두려움에 새파라니 떨고 있었지
왜 여기 홀로 있으며,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 그 무엇도 모르는 채 온몸 가득 얼음을 채우고- 바람 휘감고- 갈라지고 있었지.
그런, 한순간
어떤 이가 내 몸을 감싸 안았어
나는 곧바로 녹아버렸지
부드럽고 따뜻하고 조용한 그 품속에서
얼음은 다시- 반짝- 숨이 돌았고
배고프지 않고, 춥지 않았으며 무섭지도 않던 거기서
문득
깨어났을 때
나는 몽땅 벌거숭이였지만
점차 알게 되었지
알 수 없는 어느 은하에서 나를 구해준 그분께서는
이곳 이 마당에서까지
온갖 것 내어주고 덮어주시다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다시는 찾을 수도, 만날 수도 없는 곳으로
돌아가셨어
그분이 주신 모든 것 당연히 받을 걸 받은 줄로만 알고 희었네
어느 성운에선가 미아였던 나, 안아주신 그 하나만으로도 하늘이었는데… 이 힘든 세상에 왜 날 낳으셨을까? 그런 신음까지를 얼렸던 적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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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2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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