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족
정숙자
죽음 이후, 어떤 컬러가 전개될 거라는 추측은 관성이다
미래를 색칠하고, 그 문을 향해 걷거나 혹은 앓기도 했던
한순간도 의심하지 않았던 아침과 태양과 거울
죽음 너머의 배경을 간접체험으로, 어렴풋이라도 상정해보는 미터법 또한
죽음이 싫어서도 두려워서도 아닌
단지 활력의 관성일 따름이다
타성은 쉽사리 지지 않는다
급제동은 급발진과 맞먹는 돌발의 접점일 뿐…
삶이란 별 것 아냐
고요를 찾자
생사일여라잖니?
괴 바이러스가 멀리 널리 창궐하는 요즈막에도
(아직도) 양서류에게 파먹힌 달빛 골똘히 들여다보는 호메로스가 있다
이게 뭔데 이리 고통스러우냐 항해라는 것, 이게 뭔데…
왜 사뭇 목메어야만 하나?
인간을, 짐승을, 미물을
한 테마에 놓고 견줄 때마다
네 개나 되는 위장으로 되새김질하는 우공牛公의 그것이 슬픔인 줄을 우리가 어찌 모를까 보냐. 우리가 반추하는 그것이 우공의 그것이라는 점 또한 어찌 모를까 보냐. 툭 놔버리지 못하고 잠 못 드는 우리가, 우리에 갇혔다는 농담 역시 우리가 어찌 모를까 보냐.
하지만, 거기 쪽빛이 남아 있으니
그리 슬퍼하는 자가 새벽을 품은 자가 아닐까 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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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소금』 2020-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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