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누군가 내 안에
정숙자
살고 있다
움직이고 있다
그는 나보다 먼저 내 앞을 본다
한 치 앞이든, 하루 앞이든, 한 달 앞이든, 일 년 앞이든 아주아주 먼먼 생의 끝까지라도 그는 보고 있고, 알고 있고
∴ 행동한다
그가 유추하고, 결정한 의지는 곧바로 내 일상에 적용된다
∴ 나는 그의 사역동사다
내가 잊어버린 말이나 발자국 표정에 이르기까지, 그는 모두 기억하고 소유한다. 깨지거나 퇴색하지도 않는, 과거들···
···을 그렇게도 면밀히 관리-편집하며,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선택지를 올려보내는 그는 누구일까. 없는 내 안에 사는
그를, 이제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내가 모르는, 나를 너무나도 잘 아는 그가 인드라망을 보살피며 엮어가며 (잠들지도 않고) 전후좌우 쌓이는 눈을 쓸어주고 있었던 거다. 겨울만이 아니고, 어둠만이 아니고, 목메는 순간만이 아니고 늘 그렇게 그는
그림자이거나
무의식이거나
신이라 해도
무방한
옳아, 전화가 닥쳤을 때도 그가 수고했겠지. 천둥 번개를 걷어내며 위복의 시기를 마련했겠지.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그리 나아가도록 비추었겠지. 누군가를 어디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안에 사는 그를 위하여 나도 뭔가 좀 더 짙어져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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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웹진 『시인광장』 2020-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