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나의 근작시

동역학

검지 정숙자 2020. 7. 4. 16:40

 

 

    동역학

 

    정숙자

 

 

  하나둘 우물이 사라졌다

 

  마을과 마을에서

  '깊이'가 밀려난 것이다

 

  우물물 고이던 시간 속에선

  두레박이 내려간 만큼

  물 긷는 이의 이마에도 등불이 자라곤 했다

 

  꾸준히 달이 깎이고

  태양과 구름과 별들이 광속을 풀어

  맑고 따뜻한 그 물맛이 하늘의 뜻임을 알게도 했다

 

  하지만, 속도전에 뛰어든 마을과 마을에서 우물은 오래가지 못했다

 

  노고를 담보하지 않아도 좋은 상수도가 깔리자

  물 따위는 쉽게   쉽게   채우고 버릴 수 있는

  값싼 거래로 변질/전환되었다

 

  엔트로피의 상자가 활짝 열린 것이다

 

  가뭄에도 사랑을 지켰던 우물 속의 새

  언제 스쳐도 깨끗하기만 했던 우물물 소리

  그런 신뢰와 높이를 지닌,

 

  옛사람, 무명 옷깃 어디서 다시 만날까

  그리고는 우물가에 집짓고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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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인동네』 202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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