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나의 근작시

얼음 파이(π)

검지 정숙자 2019. 4. 16. 02:02

 

 

   얼음 π

 

    정숙자

                    

                                          

  0℃는 미풍에 섞인다. 먼 데서 일어선 그 바람은 살얼음을 품는다. 수면의 가장자리부터 건드린다. 한 겹, 한 겹씩 발목 잡히는 물결. 중심까지 굳히는 데는 한 계절을 몽땅 걸어야 한다.

 

  지나온 봄여름을, 여름가을을 다 게워야 하지. 겨울도 초입에서는 아니 얼고 한복판에 가서야 꽝꽝 얼 수 있음을… 얼었음을 증명하지. 그래야만 비로소

 

  철새를 부를 수도

  구름들을 헹굴 일도

  햇살 튕겨 낼 물별*도 없지

  그러나 그때 호수는

 

  찢어진 환상

  삼라만상을 떠나

  오롯이 견고가 되어보는 것이다

 

  물이었던 기의를, 물결이었던 기표를, 호수였던 둘레를 그 모두를 응집한 거울, 겨울을

 

  쨍그랑          

  깨뜨려 버려- - - - - - -

 

  들녘 가득히 유리 파편이 깔리고, 언덕 촘촘히 유리 파편이 스며들고, 깃털들 다시 살아나고 비척대고… 저 아래 지느러미로 울부짖으며

  길섶에 문득 솟은 초록들, 새로이 눈뜬 그 부리들을 일일이 어루만지며, 윽 소리 저절로 끓는 살풍경 매번 되풀이로 겪는 호수는 끝없이, 끝없이,

   -전문-

 

  *물별: 물결이 햇빛을 반사할 때 생기는 섬광(필자의 신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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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사』2019. 3-4월호 <시사사 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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