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π
정숙자
0℃는 미풍에 섞인다. 먼 데서 일어선 그 바람은 살얼음을 품는다. 수면의 가장자리부터 건드린다. 한 겹, 한 겹씩 발목 잡히는 물결. 중심까지 굳히는 데는 한 계절을 몽땅 걸어야 한다.
지나온 봄여름을, 여름가을을 다 게워야 하지. 겨울도 초입에서는 아니 얼고 한복판에 가서야 꽝꽝 얼 수 있음을… 얼었음을 증명하지. 그래야만 비로소
철새를 부를 수도
구름들을 헹굴 일도
햇살 튕겨 낼 물별*도 없지
그러나 그때 호수는
찢어진 환상
삼라만상을 떠나
오롯이 견고가 되어보는 것이다
물이었던 기의를, 물결이었던 기표를, 호수였던 둘레를 그 모두를 응집한 거울, 겨울을
쨍그랑
깨뜨려 버려- - - - - - -
들녘 가득히 유리 파편이 깔리고, 언덕 촘촘히 유리 파편이 스며들고, 깃털들 다시 살아나고… 비척대고… 저 아래 지느러미로 울부짖으며
길섶에 문득 솟은 초록들, 새로이 눈뜬 그 부리들을 일일이 어루만지며, 윽 소리 저절로 끓는 살풍경 매번 되풀이로 겪는 호수는 끝없이, 끝없이,
-전문-
*물별: 물결이 햇빛을 반사할 때 생기는 섬광(필자의 신조어)
--------------------
*『시사사』2019. 3-4월호 <시사사 포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