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 프로젝트-36
정숙자
비탈은 행인을 시험한다// 만일 어떤 소년이 천천히- 치밀히- 열심
히- 끝까지- 최선을 다해 거기, 뿌리를 내린다면 그건 소년의 정신이
아니라 비탈의 목표로 보아야 한다
비탈은 바람과 안개를 품고 누군가 다가오기를 기다린다, 그리고는
자,
여기
살아보아라
천 길 낭떠러지
절대로 낮출 수 없다
이 산에 한 번 들어선 이상
돌아나갈 길이란 없다
이제,
선택하라
뭐든 네 몫이다
모든 종류의 하늘이 네 안에 있다
공중에도 땅속에도 비탈이 깎여 새들조차 신중히 딛고 나아가는데
이것이 이 마을의 전경이라면 절반은 신의 대행이리라. 어둠을 기어
오른 매미라 한들 어찌 울지 않겠으며 노래하지 않겠으며 어느 순간 믿
고 기댔던 나뭇가지를 놓지 않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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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2018-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