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원 이동
정숙자
강남 고속터미널에서 지하철 9호선을 타려면 깊숙이 내
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야 한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그걸 타고 1/3쯤 하강 중이었다. 그때, 저 아래에서 계
단을 밟고 올라오는 사나이가 보였다. 저벅저벅 확신에 찬
모습이었다. 계단은 유유히 내려가고 사나이는 계속 (진전
없이) 올라서고 있었다. 곧 부딪칠 텐데, 바로
그 순간 꿈에서 깨어났지만… … …
역행? 왜?
아아, 이곳에 서툰 좀비였구나
어쩐지 좀 뼈가 없어 보인다 싶더니만!
나는 좀비를 다른 에스컬레이터로 안내했다
그리고는 이내 마음이 편해졌다
그런데 이틀 후
좀비가 다시 내 의식을 열고 들어왔다
뭐지? 왜 안 잊혀지지?
아아아, 날 만나려고 경계를 넘어온
남편… 이… 었… 는… 데…
몰라보고, 아는 척도 안 하고
다른 에스컬레이터로… … …
이쪽과 저쪽은 무슨 규칙이 있어 그렇게도 허망하게 만
나야 된단 말인가. 얼굴마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여보! 하고 한 번만 부르면 곧 알아들었을 것을, 왜 이리 뒤
늦게 알아채야 한단 말인가. 작별도 못한 그것이 맺혀 찾아
오는 것인가. 부디 잊지 말라는 당부라도 하고픈 것일까. 내
다니는 길을 어찌 알고, 그 머나먼 산을 넘어
달이 어째서
서방까지 가시겠습니까.
무량수불전에 보고의 말씀 빠짐없이 사뢰소서.
서원 깊으신 부처님을 우러러 바라보며,
원왕생 원왕생
두 손 곧추 모아
그리는 이 있다 사뢰소서.
아아, 이 몸 남겨두고
사십팔대원 이루실까. (「원왕생가」, 김완진 해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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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파란』 2018. 봄-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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