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시인의 시

내 마음에 별이 뜨지 않은 날들이 참 오래되었다/ 주용일

검지 정숙자 2016. 6. 17.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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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마음에 별이 뜨지 않은 날이 참 오래되었다

 

    주용일(1964~2015, 51세)

 

 

  별 밤, 아내가 부엌에서 설거지를 한다. 그녀도 처음에는 저 별들처

럼 얼마나 신비롭고 빛나는 존재였던가. 오늘 저녁 아내는 내 등에 붙은

파리를 보며 파리는 업어주고 자기는 업어주지 않는다고 투정을 부린

다. 연애시절엔 아내를 많이도 업어주었다. 그때는 아내도 지금처럼 무

겁지 않았다. 삶이 힘겨운 만큼 아내도 조금씩 무거워지며 나는 등에서

자꾸 아내를 내려놓으려 했던 것은 아닐까.

  가을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나는 내 마음속

에서 뜨고 지던 별들이며 노래들을 생각한다. 사랑, 평등, 신, 자유, 고

귀함 이런 단어들이 내 가슴에서 떴다 사위어가는 동안 내 머리는 벗겨

지고 나는 티끌처럼 작아졌다. 새들의 지저귐처럼 내 마음에서 부드럽

고 따뜻한 노래가 일어났다 사라지는 동안 내 영혼은 조금씩 은하수 저

쪽으로 흘러갔다.

  이제 내게 남아 있는 것들을 생각한다. 이루지 못한 꿈들이며, 가엾

고 지친 영혼이며, 닳아버린 목숨이며, 애초에는 없던 가족, 집과 자동

차, 보험금, 명예 이런 것들이 별이 뜨고 지던, 노래가 생겨나던 마음을

채워버렸다. 별이 뜨지 않는 밤하늘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노

래가 없는 생을 한 번도 떠올려보지 않았는데 그런 날들이 참 오래되었

다.

 

 -주용일 유고시집,『내 마음에 별이 뜨지 않은 날들이 참 오래되었다』(오르페,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