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시인의 시

죄값/ 이가림

검지 정숙자 2016. 6. 18. 12:53

 

 

    죄값

 

    이가림(1943~2015, 72세)

 

 

  사는 동안

  하도 많은 죄를 지어서

  그 죄값이 얼마인지

  나는 모른다

 

  남의 밥통을 몰래

  가로챈 죄,

  남의 생각을 내 것인 양

  슬그머니 둔갑시켜

  팔아먹은 죄,

  자정 넘어 술에 취해

  남의 집 대문에

  오줌을 갈긴 죄,

  거리에서, 엘리베이터 안에서

  숱한 여자를

  눈으로 간음한 죄,

 

  신부님한테조차

  반쯤만 사실대로 털어놓고

  나머지는 거짓말로 꾸며

  고백한 죄……

 

  이 세상에서 가장 죄 없는 일이

  시를 짓는 일이라기에

  수없이 시를 지어 발표했는데

  그 역시

  곧장 갈 수 있는 진실의 지름길을

  아리송한 말을 늘어놓아

  헷갈리게 한 셈이니

 

  이 많은 죄값을

  어찌 갚을 것인지

 

  혹시

  그럴 수 있다면,

  다음 세상에 가서

  프랑시스 잠의 당나귀가 되어

  투르네 마을 농부들의 짐을

  평생토록 져나르는 것으로

  빚을 갚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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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토피아』2016-여름호 <추모특집 : 이가림 시인 타계 1주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