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값
이가림(1943~2015, 72세)
사는 동안
하도 많은 죄를 지어서
그 죄값이 얼마인지
나는 모른다
남의 밥통을 몰래
가로챈 죄,
남의 생각을 내 것인 양
슬그머니 둔갑시켜
팔아먹은 죄,
자정 넘어 술에 취해
남의 집 대문에
오줌을 갈긴 죄,
거리에서, 엘리베이터 안에서
숱한 여자를
눈으로 간음한 죄,
신부님한테조차
반쯤만 사실대로 털어놓고
나머지는 거짓말로 꾸며
고백한 죄……
이 세상에서 가장 죄 없는 일이
시를 짓는 일이라기에
수없이 시를 지어 발표했는데
그 역시
곧장 갈 수 있는 진실의 지름길을
아리송한 말을 늘어놓아
헷갈리게 한 셈이니
이 많은 죄값을
어찌 갚을 것인지
혹시
그럴 수 있다면,
다음 세상에 가서
프랑시스 잠의 당나귀가 되어
투르네 마을 농부들의 짐을
평생토록 져나르는 것으로
빚을 갚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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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토피아』2016-여름호 <추모특집 : 이가림 시인 타계 1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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