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시인의 시

바위틈의 소나무/ 이해웅

검지 정숙자 2016. 4. 19. 14:58

 

 

    바위틈의 소나무

 

    이해웅(1940~2015, 75세)

 

 

  솔방울에서 씨앗 하나가

  우연찮게 바위틈에 내려앉았다

  비의 여린 손길이

  씨앗을 어루만져주고

  햇빛이 나뭇잎 사이로 내려와

  어깨를 다독거려준다

  차츰 씨앗이 부풀어 올라

  바위틈에 발을 내리고

  두 팔을 뻗어 기지개를 켠다

  해가 뜨고 지기를

  수십만 번

  장년이 된 소나무는

  용틀임 한 번에

  큰 바위 하나를

  쩍 갈라놓았다

  그걸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혀를 내둘렀다

 

  이 날부터 이 소나무는

  산을 지키는 신이 되었다

 

 

  * 2013년 한국시인협회 사화집

 『시인들 생명을 그리다에서/ 2013. 5.1. <홍영사>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