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시인의 시

김석준_시가 포획해야 할 것들…(발췌)/ 全羅道길 외 1편: 한하운

검지 정숙자 2016. 6. 17. 23:16

 

 

    全羅道길

      - 小鹿島로 가는 길

 

     한하운(1919~1975, 54세)

 

 

  가도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절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으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길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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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의 노래

 

 

  지나간 것도 아름답다

  이제 문둥이 삶도 아름답다

  또 오히려 문드러짐도 아름답다

 

  모두가

  꽃같이 아름답고

  ………꽃같이 서러워라

 

  한세상

  한세월

  살고 살면서

  난 보람

  아라리

  꿈이라 하오리

    -전문-

 

 

  시가 포획해야 할 것들 : 긍정의 힘, 희망의 원리, 상호타자성(발췌) : 김석준

  어쩌면 한하운이 포획한 저 절대의 경지는 현대의 시가 포기한, 혹은 현대의 시들이 감히 도달할 수 없는 곳에 위치한 미의 절대적인 표상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시인의 그것은 칸트의 숭고미를 훨씬 초월하는 지점에 위치한, 따라서 리오따르가 『포스트모던의 조건』에서 말했던 포스트모더니즘의 미적 원리를 가볍게 논파시킨 어떤 절대성의 원리를 함의한 것이겠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하운 시인이 육화시킨 상호타자성은 개화기 이래로 근현대시들이 절대 가져보지 못한, 시와 삶이 일치된, 말이 곧 삶-시간-세계를 대변하는, 절대긍정으로 인간학 전체를 포획하는, 혹은 시인이라면 누구나 다 반드시 도달해야만 하는 어떤 숙명의 과제임에 틀림없다. 역으로 문학사적 기술과는 무관하게 철저하게 방외인에게만 나타나는 이러한 반어적 징후는 천상병과 더불어 한하운 시인에게 부과된 언어의 운명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한하운 시인은 천형의 역병 앞에 삶을 굴복시키지 않았으며, 천상병과 달리 제도나 이데올로기라는 절대 이념의 기괴한 구성물 앞에 스스로를 침몰시키는 무모한 행위도 하지 않는다. 부정성과 저항과 침몰로 일관했던 카프카와 달리 한하운은 모든 시련에 맞서 두 개의 긍정을 성취하기에 이르는데, 그것이 바로 「생명의 노래」에 표현된 언어적 실재이다. 새로운 미적 이념의 제시 혹은 포월의 정신성, 이제까지 표현된 미의 체계를 철저하게 붕괴시켰으며, 모든 타자와의 거리를 동일성으로 봉합하기에 이른다. 생을 거쳐갔던 시간의 역학 전체가 미적인 것으로 전유되었으며, 마침내 인간학 전체를 '꿈'의 표현법으로 승화시키기에 이른다. 아름답지만 서럽고, 서러운 듯하지만 이내 모든 존재가 "꽃"으로 고양되는 바로 그 지대가 생명이 술회되는 참된 인간학의 노래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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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표현』2016-6월호 <한국 시단의 별들>에서

 * 김석준/ 1999년 『시와시학』으로 시, 2001년 『시안』으로 평론 등단, 시집『기침소리』외. 평론집『비평의 예술적 지평』『현대성과 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