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시 2
정숙자
나는 나 자신의 귀에서 태어났다
나는, 내가, 나만이 잘 듣지 못한다는 사실도 모른 채 성장기를 지났다.
소리가 잘 닿지 않는 뇌는… 소리가 잘 닿지 않는 꼭 그만큼 어두웠다. 청
력이 아닌 시력으로써 덩어리째 안겨오는 소리를 조각해야 했다. 현명한
대답은커녕, 말 자체를 알아듣는 것만으로도 온몸의 집중이 수반되었다.
늦었다. 그리하여 나는 늦었다. 그리하여 나는 항상 늦었다. 그리하여 나
는 항상 슬픈 줄도 모르고 오래오래 늦었다.
(읽고, 읽고, 또) 읽음은 좀 더 많이 듣는 것이기도 했다. ‘읽음’은 나를
신세계로 이끌었다. 나는 나 자신의 피로써 제2의 분만을 잉태했다. 길을,
책을, 현황을 열람/숙독했다. 상처와 함께 (걷고, 걷고, 또) 걸었다. 늦었
다-해도, 늦은-그대로. 결국 한 줄의 삶은 한 권의 대지에 최선을 심고 가
면 되는 거니까. 내 눈이 유난히 멍한 까닭은 보이는 것의 저편에 놓인 소
리까지 더듬어야 하는 수고를 맡았기 때문이다.
나는 나 자신의 귀에 수감되었다
* 『들소리문학』2015-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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