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나의 근작시

이슬 프로젝트-11 /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15. 3. 5. 20:31

 

 

     이슬 프로젝트-11

                                                        

       정숙자

 

                                                               

   생존// 햇빛이 필요했다. (중이염이 엽록소를 축내고 있었다) 규격화된

저녁산책을 한낮으로 옮겼다. 외투, 털모자, 마스크와 장갑, 목도리도 단단

히 에둘렀지만 몰아닥친 한파가 슬픔을 보장하는 길, …로

 

   안경을 걸치고 책을 읽으며 걸었다. 걷는 독서엔 몰입의 매혹이 있다. 아

무것도 하지 않고 놔두는 시간은 멀리 달아나버리고 만다. 그 시간은 알 수

없는 곳으로 사라져 영원히 돌아볼 수조차 없게 된다.

 

   수십 마리의 비둘기가 나를 따라 걷고 있었다. 비둘기들은 흡사 내 검은

외투의 그림자였다. 뭘까? 웬 일일까? 순간 나는 빙의되었다. 낮았다. 게다

가 몹시 배가 고팠다. 한파가 슬픔을 보장하는 길, …은

 

   곡물 가게를 떠오르게 했다. 외투 주머니 속 만 원이 만져졌다. 나는 잠시

비둘기들과 헤어져 (지하상가에 마트가 있다) ‘깨끗한 늘보리’ 한 봉투를 샀

다. 얼어붙은 분수대 옆 훤한 보도블록에 주욱 뿌렸다.

       

   “맛있어. 맛있어” 여념 없는 비둘기들을 뒤로하고 나는 다시 책을 읽으

며 돌아온다. 의지에 갇힌 시간은 섣불리 도망가지 못한다. 기억은 시간의

화석이므로…, 몰아닥친 한파가 슬픔을 보장하는 길, …도

                                                                                       -전문-

 

  ( 책에 실린 이후 부분은 편집상의 착오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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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2015-봄호/ 신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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