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 프로젝트-9
정숙자
홀로 익는 풀씨처럼// 지구를 알기 위해 지구 전체를 돌아다닐 필요
는 없다. 태어난 곳에서 한 생을 살다보면 모두 읽힌다. 하늘, 땅, 나무,
바람, 구름, 새… 사람, 사람들… 사람을 읽는 데서 지구는 끝난다. (무엇
이 사랑인지를 아는 것보다 무엇이 사랑이 아닌지를 아는 것이 더 사랑
이다.)
밟고 다니는 것도 미안하다. 생명체로 여기면서… 그에게 양해를 구하
지도 않았으면서… 리본을 묶어 줄 수도, 패물(佩物)을 선사할 수도 없
고… 가능한 한 버리지 않는 것만이, 덜 버리는 것만이 그를 아끼는 자의
최소한의 예로써, 아니 절대치의 행위로써… 나는 할 수 있는 한 재활용
한다.
정말 버릴 수밖에 없는 것만 버리지만, 컨테이너에 쓰레기봉투를 버릴
때도 아무렇게나 휙 던지지 않는다. 처박히지 않도록 적당한 자리에 잘
안착시킨다. 그리고 ‘안녕, 잘 가’ 나직이 인사한다. 행인이라도 있으면
속으로만 하고, 아무도 없을 땐 소리 내어 ‘잘 가, 안녕’ 손도 몇 번 흔든
다.
지구는 나의 것이 아니며, 나는 지금 지구를 통과하는 중. 언젠가는 이
모든 것이 그리울 것이다. 본래의 모습을 잃고 쓰레기로 분류된 사물들
은 버려지면서도 반항하거나 배신하지 않을 뿐더러 내 삶을 제 삶의 끝
까지 도와준 친구들이다. 오늘도 나는 다만 그렇게 지구와 연인, 지구의
애인.
* 『시작』2014-겨울호/ 신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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