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산책 _ 김희업
가까이 하면 감전될 것 같은 두려움이 몰려드는 밤
그림자를 두고 잠을 청해본다
그동안 그림자와 붙어먹었다
그렇지만
몇 번이던가, 그림자와 결별하려고 돌아섰던 순간이
그때마다
보기 싫어도 슬며시 보게 되는, 제 몸에 난 흉터처럼
자신도 모르게 느끼는 그림자를 향한 어떤 연민이랄까
나를 옮겨 적던 그림자가
어느덧 내 몸의 서체를 흉내 내고 있었다
중심이 흔들린 날이면 함께 요동친 그림자
가능한 한 혼자는 행동하지 않는다는 나름의 규칙을 세운 모양
내게 묶여 부자연스럽겠지, 했더니
외려 나를 묶어두고는
곁을 떠나지 않는 방식으로
일생을 통틀어 빛 한번 못 본
그림자의 순애(殉愛)
무념무상 물소리로 도착한 밤들
나의 비좁은 세계를 빠져나와
그림자를 통과하던 암울한 일식의 날들
그림자에 가려져 내가 안 보였다
어쩌지요, 사는 동안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을 것 같은데
잠든 그림자를 깨우려 가슴에 손을 얹자
36.5도의 체온을 지닌
또 하나의 심장이 뛰었다
김희업『비의 목록』
지구 생명의 기원은 물에 있다. 그렇다면 태초에 물은 어디서 왔을까. 일부 과학자들은 태양계 밖에서 떠돌던 얼음 혜성이 우연히도 지구에 부딪힘으로써 바다도 생기고 습기가 공급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에 걸쳐 원시지구에 충분한 물이 확보되었으리라는 견해다. 지구는 태양과 적당한 거리에 위치해 있어 얼음이 녹아 흐르기에 알맞은 조건이고, 그에 따라 생명의 출현이 비롯되었다는 것.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비는 우리에게 매우 소중한, 없어서는 안 될 대지의 자양이다. 비가 오지 않는 곳, ―거기가 바로 식물의 씨조차도 말려버리는 사막 아닌가. 물론 폭우나 쓰나미 등으로 인한 폐해도 적지 않지만, 이번에 나온 김희업 시인의 『비의 목록』에서는 그런 종류의 재난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큰 탈 없이 내리는 빗속의 광경들을 깊은 성찰과 함께 작품화했다. 표제시 「비의 목록」만 보더라도 “비가 거리의 목록에서 노점을 지웠다”, “비가 거리의 목록에서 이제 웃음조차 지우려 한다”고 술회하며 “오늘은 비의 목록에 따뜻한 위로가 추가되어야 할 것 같다”고 인간애의 회복을 겸허히 제안했다.
“주체는 이미 모든 대상에 대해서 자유롭다. 주체는〔모든 대상으로부터의〕물러섬이며, 모든 것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오로지 자기로 머무를 수 있음(quant à soi)이다(에마뉘엘 레비나스 『존재에서 존재자로』서동욱 옮김/민음사).” 그렇다. 김희업 시인은 모든 것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오로지 자기만의 자유로운 시선으로 비오는 날의 목록을 작성했으므로, 이는 김희업 시인 고유의 세계이며 새로움이고 행위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시집에 배열된 작품들 거지반이 비오는 날의 어둠과 다를 바 없는 그림자로서 생동한다.
그러므로 「무너지는 얼굴」, 「눈보라 퀵서비스」, 「리어카의 신앙」, 「비행법」,「구원」, 「세입자」등의 시편들도 어렵사리 살아가는 이들로부터 죽음을 결행한 소녀에 이르기까지 「비의 목록」이라고 짚을 수 있다. 그런 의미로 접근할 때 「비의 목록」에서 “비의”란 소유격으로서의 ‘비의’를 넘어 祕議와 悲意가 중첩된 구조로 읽어도 무방하리라고 본다. 그렇다면 이 시집의 진정한 미학은 무엇일까? 그 점은 바로 생존마저 위협받는 자본주의의 팽창 속에서도 현실을 초월하는 영혼과 의지를 꺼트리지 않는 정신에 있다 하겠다.
“잠든 그림자를 깨우려 가슴에 손을 얹자/ 36.5도의 체온을 지닌/ 또 하나의 심장이 뛰었다”고 자기 안의 대자(對自)에게 말하는 바로 그 지점! (정숙자) ▩
* 『시사사』2015.1-2월호/ 시집 속의 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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