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작품론

시집 속의 시 읽기 / 빛의 저격수 : 진수미

검지 정숙자 2012. 7. 20. 02:30

 

  <시집 속의 시 읽기 | revieu  / 진수미 『밤의 분명한 사실들>

 

 

  빛의 저격수

 

   진수미

 

 

삐뚤빼뚤한 치열을 두드릴 수는 없잖아

잇새에 돌이 가득했다. 의사는 스케일링을 권했다.

치지도 않은 건반의

뚜껑을 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으므로,

 

작은/아버지는 조율사였어요 가끔은 제 몸도 만졌죠

 

복기할 수 없는 음들이 밤마다 찾아오고

욕실에 달린 얼굴에는 누군가 밟고 다닌 흔적이,

 

몇 날 며칠을

턱을 잡고 앓았다.

아랫배도 수상스레 부풀어 오르는데,

 

작은/아버지는 조율사였어요 가끔은 제 몸도 만졌죠

 

약사는 말없이 진통제를 내밀었다.

전선 위에는 하얗고 검은 새들이 줄지어 앉아 있다.

어젯밤 그녀가 뜯어낸 건반들이다.

햇빛이 그들을 쏴 맞추고 있다.

 

코 위까지

점퍼의 지퍼를 올리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작은/아버지는 조율사였어요 가끔은 제 몸도 만졌죠

 

무심코 고개를 돌리자

살찐 건반의 관절이 꺾이면서 공기의 현을 두드린다.

무광의 돌들은

눈도 깜박이지 않고 빛을 되쏘고 있었다.

                                                        -전문-

 

 

   진수미『밤의 분명한 사실들』

 

 『밤의 분명한 사실들』에서 분명한 사실이란 수월히 잡히지 않는다. 언어 이전의 빛과 언어 이후의 빛, 혹은 언어 이전의 어둠과 언어 이후의 어둠이 악보화 되어 있을 따름이다. 그렇다고 이 악보를 들고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을 두드리려 해서는 안 된다. 이 악보는 다만 악보에서 멈춘다. ‘소리’가 튀어나가지 않게끔 장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빛의 저격수」에서 치아와 건반은 소리/빛/언어를 위한 도구이지만 “잇새에는 돌이 가득”하고 조율사는 건반이 아닌 ‘몸’을 만졌다.

  “작은/아버지는 조율사였어요 가끔은 제 몸도 만져 줬죠

  그로부터 건반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린다. 이 시에 나타난 그녀는 이후 건반을 뜯어내고 침묵으로 굳어진 돌을 잇새에 문다. 의사가 스케일링을 권하지만 “무광의 돌들”을 어쩌지 않은 채 “눈도 깜박이지 않고 빛을 되쏘고 있"다. 시인 진수미는 “되쏘고 있었다”는 과거 시제를 차용했지만 이 시의 심급으로 진단하건대 오늘뿐 아니라 내일모레글피까지도 저격당한 빛의 슬픔은 진행될 것이리라. 그리하여 그 이름 위에 어둠을 되쏘는 행위로써

  “작은/아버지는 조율사였어요 가끔은 제 몸도 만져 줬죠

이렇게 줄을 그어버린다. 빛의 저격수를―저격한다. 소리 없이 세월을 두고 소리 없이 세월을 두고 어둠과 침묵을 조장해온 빛의 저격수를―저격한다. “작은/아버지”에겐 가격이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리듬과 터치가 사뭇 숙연하다. 다만 “작은/아버지는” 꼭 작은 아버지가 아니어도 무방하다. 개개인의 빛의 저격수는 각기 다른 호칭을 기억할 것이므로.

  이 시는 절제와 압축미가 압권이다. 상징과 어휘군(語彙群)도 탄탄한 구조를 보여준다.『밤의 분명한 사실들』전면에 짙은 어둠이 깔려 있지만 우리가 읽고자 하는 것은 <행복가이드>의 말씀이 아닌 완성도 높은 시의 향훈이기에 필자는「빛의 저격수」를 단 한 편으로 뽑았다. 삶에서 “완전함이라는 황홀경의 감각은 순간적일 수밖에 없다.”(『고독의 위로』앤서니 스토Anthony Storr 1920-2001)고 하지 않는가. 우리에겐 맹물도-눈물도 기름으로 쓰일 뿐이다. (정숙자)

 

  * 『시사사』2012.7-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