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향』2014-겨울호 <기획연재 4. 시인과 삶/ 대담자 : 정숙자(시인), 김안(시인)
" 발자국 한 개 삐뚤어졌다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걷는다"
-시를 향해 정진하는 구도자의 풍경 속으로
정숙자 : 김안
정숙자 시인을 생각하면, 늘 먼저 그 단정하고 귀품 있는 모습부터 떠올리게 된다. 언제나 흐트러짐 없이 있는 그 모습은 정숙자 시인이 시를 대하는 태도로 귀결되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이런 모습은 정숙자 시인의 시 「나의 作詩法」에서 "발자국 한 개 비뚤어졌다/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걷는다"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그가 말하는 원점은 아마 시적 사유가 시작되는, 시인의 삶 속에서 시가 시작되었던 장소성과 시간성을 모두 포함하는 곳일 것이다. 그곳은 신성함이 궁극에 달해 있고 그 안에서 시인은 '시'를 향해 정진하는 구도자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원점의 풍경이 어떠한지 궁금했다.
김안 : 처음 시를 만났던 시절의 이야기가 먼저 궁금합니다. 아마도, 시가 다가오게 되었던 내적 자극, 외적 자극이 모두 있었을 텐데요.
정숙자 : 시를 만난 최초의 기억은 그것이 시인 줄도 모를 때였습니다. 10살이었는데요, 여름날의 어느 초저녁이었어요. 대문 밖 동산에 올라 먼 데서 깜빡이는 몇 개의 작은 별을 보았어요. 일상적인 풍경이라 이상할 것도 없었지만 그날은 기이하게도 유별난 생각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잠잘 준비를 하는데, 별들은 부스스 일어나는구나’라고요. 그 난데없는 발상이 얼마나 황홀했는지 가슴 한쪽에 한동안 빛이 차 있었어요. 그리고 그 사실은 혼자만 알고 있었죠. 왜냐하면 그런 건 얘깃거리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언니나 동생, 친구들에게 말했다가 괜히 이상한 애 취급이나 받지 않을까? 조롱을 당하지나 않을까? 규정지을 수 없는, 훼손되면 안 될 것 같은 소중함 때문이었습니다. ㅋ ㅋ 진짜 웃기죠? 돌이켜보면 특이한 상상도 아니었는데, 어쨌든 그 스파크가 저의 평생을 끌고 갈 시의 종자였던가 봐요. 그 시점이 저는 자연적으로 주어진 내적 자극으로 여겨지고요, 외적 자극이라면 중학생이 되자마자 문예반 활동을 하는 급우들의 ‘작품집’을 봤을 때입니다. 저는 다른 클럽이었으니까요. 참으로 멋진-부러운, 처음 맞닥뜨린 충격이었어요. 알고 보니 ‘시’ 모음집이었는데 그 순간에 바로 감전되어버렸지요. 시밖에 볼 줄 모르게끔 눈이 멀어버려, 지금까지 끔벅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때가 13세, 꼭 50년 전이군요. 아무튼 그 이후로 저는 지금까지 시 외에는 아무것도 재미가 없습니다.
김안 : 시와의 ‘첫’ 대면 순간을 들으니 조금 숙연해집니다. 누구나 어린 시절에 받은 강렬한 풍경이 하나쯤 있을 텐데 선생님께는 저녁 하늘이었군요. 선생님의 ‘첫’에서 미당 선생을 빼놓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미 여러 지면에서 그 인연에 대해 말씀하셨죠. 이미 말씀하셨던 것 외에 미당 선생의 여러 가르침들 중에서 지금 이 순간까지도 시를 쓰는 데 있어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이 있으신지요?
정숙자 : 아, 옷깃을 좀 여미겠습니다. 스승님의 바람에 부응하지도 못하고 비칠거리는 가운데 머리털이 희어버려 참 부끄럽고 죄스럽기만 합니다. 그리고 또 이렇게 뭔가 말씀을 드리자니… 오늘은 왠지, 뒤늦게 철드는지 마음 켕기는 날입니다. 그래도 이왕 궁금히 여기시니 제 삶에 각인된 어록 중 두 개만 꺼내겠습니다. 누누이 이르신 첫 번째는 “세상에 붙댕기지 말라.”는 것이었고요(붙댕기다: ‘붙들리다’의 방언). 그 점은 급변하는 시적 기류와 시인으로서의 자세를 뜻하시는 거였어요. 그리고 이건 딱 한 번 말씀하셨지만 “시는 누가 쓰든 잘 쓰는 게 문제지, 꼭 내가 써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요. 숙지하고 실천하며 길이 지켜야 할 칙(則)이 아닐까요?
김안 : 선생님은 여덟 권의 시집(『하루에 한번 밤을 주심은』(1988), 『그리워서』(1988), 『이 화려한 침묵』(1993), 『사랑을 느낄 때 나의 마음은 무너진다』(1993), 『감성채집기』(1994), 『정읍사의 달밤처럼』(1998), 『열매보다 강한 잎』(2006), 『뿌리 깊은 달』(2013))과 두 권의 산문집(『밝은음자리표』(2008), 『행복음자리표』(2014))을 내셨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선생님께 시를 쓰는 작업은, 또한 글을 쓰는 작업은 끊임없이 원점으로, 그 저녁 하늘로 돌아가는 일이라고 느껴집니다. '원점'이라고 하니 그 매일의 일상들 또한 조금 특별할 것 같습니다. 원점을 찾는 매일의 일상은 어떠신가요? 왠지 정해진 하루의 계획 속에서 지내실 것만 같은데요.
정숙자 : 크악! 저의 초초기 시집까지 다 찾으셨군요. 몸 둘 바 모르겠습니다. 등단 초기에 더검더검(더검더검: ‘조심성 없이’의 방언) 시집을 냈어요. 그게 4시집까지예요. 5시집부터 겨우 모더니티가 움텄지요. 그리고 점점 더… 제 뼈를… 제 손으로 갈아… 제가 마셨습니다. 지금도 상시 복용하지요. ‘뼈주스’보다 더 좋은 길라잡이는 없더라고요. 물론 늘 원점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미 한쪽 발부리는 그쪽을 향하고 있어요. 공간도 휘고 빛도 휜다는데 저 혼자 어떤 중력에도 휘지 않을 순 없죠. 현재 우리 시가 구조주의에서 포스트구조주의로까지 왔고, 또 상징계를 가로질러 실재계로 확장됐는데 여기서 저의 지층과 벡터를 숙고해보지 않을 수 없는 일이지요.
제가 가장 최근에 읽은 평론집(『불확정성의 시학』김윤정, 2014. 5. 푸른사상. p-77.)에서 “언어가 실질이 아니라는 관점은 언어가 본질을 담아내야 한다는 부담으로부터 언어를 자유롭게 한다. 그것은 언어로 하여금 더 이상 현실의 무게로 짓눌리지 않도록 허용하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그러나 언어가 가중된 무거움을 털어내야 한다는 당위에도 불구하고 말의 유희는 언어의 시적 성질을 훼손시킨다. 언어의 가벼움은 사물과의 분리이자 본질과의 이반이고 그것은 세계와 무관한 언어의 고립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언어는 보기엔 매혹적일지라도 세계의 내면을 소거한 비어 있는 언어이다. 또한 그것은 세계 내에서 깃털처럼 떠돌되 세계를 바꿀 수 있는 아무런 힘도 소유하지 못하는 공허한 언어라 할 수 있다.” 했는데 공감되는바 적지 않습니다.
저는 이미 귀거래사적인 시 ‘이슬 프로젝트’ 연작을 발표하고 있기도 해요. 그리고 매일의 일상이란 항상 그랬듯이 부쳐온 책 읽고, 노트하고, 회답하고… 재활용 발명에 머리 굴리고… 틈틈이 제가 고른 필독서 읽고… 산책하고… “자투리 시간(나의 作詩夢)”이든 몸통이든 시에 바치며 싱글턴(Singleton)이 된 후 더욱 조용히… 다시 순수의 자리로 회향하고 있습니다.
김안 : 산문집에 대해서도 궁금합니다. 두 권의 산문집의 제목 모두 '음자리표'로 끝나기 때문이죠. 산문이 시보다도 더욱 생활에 밀착되어 있다고 본다면, 이 산문집들의 제목은 생활에 있어서 조화를 강조하는 의도로 보입니다. 이 조화라는 것이 개인 내면의 조화뿐만 아니라, 선생님이 말씀하신 일상의 모습들에서도 볼 수 있듯 나와 타자, 나와 사물들 간의 조화를 말하고 있다고 읽었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 '밝음'과 '행복'이 존재한다고 말이죠. 이 다음은 어떤 '음자리표'가 될지 궁금합니다.
정숙자 : 네, 그렇습니다. 제 삶은 극복보다는 늘 적응하려는 쪽에 서 있었어요. 그러니까 ‘밝은’이나 ‘행복’은 자신에게 심어주는 방향의 제시이자 위안이었습니다. ‘밝음’과 ‘행복’에 음악 용어를 결합시킴으로써 생동감과 리듬감, 긍정적 의미를 부여한 셈이지요. 정작 표제 뒤에 펼쳐지는 본문들은 편편이 마음 저릿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부드럽고 따뜻한 크로스오버가 필요했던 것일까요? 제목을 최종 결정하기 전 몇몇 외우와의 의논을 거쳤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후회 없는 『행복음자리표』입니다. 이후 산문집에 대해선 아직 계획된바 없지만, 만약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음자리표 시리즈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두세 달 전에 『검약론』을 읽었는데 그 책을 쓴 새무얼 스마일즈(Samuel Smiles, 1812-1904)가 자신의 역저들을『자조론』,『인격론』,『의무론』으로 일관한 게 새삼 멋있어 보이더군요. ㅎㅎ.
김안 : 최근에 상재하신 시집 『뿌리 깊은 달』에서는 ‘작시욕’, ‘작시기’, ‘작시학’, ‘작시애’, ‘작시몽’ 등 시를 쓰는 행위에 대한 것을 주제로 한 시들이 유독 눈에 띕니다. 그래서인지 선생님께 ‘시’란 무엇인지, 또한 시를 쓰는 행위, 작시의 행위란 어떤 의미인지가 궁금합니다.
정숙자 : 그러시군요. 작시법 시리즈는 『현대시』2007년 5월호 <이달의 시인>에 발표했던 것들입니다. 몇 편 더 써서 10편을 만들었지요. 그런데 그 당시에는 거의 메타시를 기피하는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시에서 허물지 못할 경계가 무엇이랴’ 정면 돌파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때 저의 용기를 북돋아준 사람이 사물시를 쓴 ‘프랑시스 퐁주‘입니다. 퐁주의 저서를 집중적으로 읽고자 하였으나, 절판된『테이블』을 구할 수가 없어서 여기저기 단편적으로 뒤져 읽었습니다. 그리고 2010년에야 구할 수 있었지요(초판 2쇄, 책세상). 어쨌든 시적 대상이 따로 있는 건 아니라고 여기며 불모지를 개간하는 데 역점을 두었습니다. 그나저나 작시법 시리즈의 존립 근거는 제목의 운용에 있었다고 봅니다. ‘작시몽’, ‘작시학’ 등 일련의 새로운 조립을 선보였으니까요.
그리고 부언하자면, 그 시리즈는 부록으로 실으려던 것이었습니다. 늘 시만 드러나고 제작과정은 묻혀 있기에 ‘공정(工程)’의 공개도 괜찮겠다 싶었지요. 『열매보다 강한 잎』에서도 ‘無爲集’ 시리즈 10편이 생활시였는데 4부에 집중 배치했어요. 그때도 그 시리즈의 반응이 과히 나쁘지 않았습니다. 시집 한 권에 10편쯤은 작품의 이면을 담자는 의도였습니다만, 『뿌리 깊은 달』에서는 부록으로서가 아니라 전면에 산포되어 오히려 초점이 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거기서 저는 깊이 헤아려봤습니다. 원고지 밖의 현상/현실/현장 이보다 더 강력한 자성(磁性)은 없다는 것을요. 표제시든 뭐든 제가 방점을 찍었던 작품들은 뒤로 물러나고 직접 손에 쥐어지는 시리즈 작품들이 회자되고 있거든요. 어쩌면 요즘의 불통의 시들이 불러온 반작용일 수도 있지 않나 의문이 들기도 했고요.
아참, 시란 뭐냐고요? 미시적인 차원에서라면 저에게는 ‘정화’인 듯합니다. 시를 통해서 영혼이 정화되고 승화되며 성장하게 되니까요. 변증법의 반복이며 논리이고 행위이지요. 그리고 시인에게는 누구의 시를 읽든, 어떤 시를 짓든 시 자체가 행위일 뿐 아니라 ‘천로역정’의 계단이라고 봅니다. 꺄르르~ 꺄르르~ 제가 너무 진지했나요?
대개 메타문학, 즉 시에 대한 시나 소설에 대한 소설은 변화의 시점에 나오기 마련이다. 정숙자 시인의 『뿌리 깊은 달』에 유독 '나의 작시' 연작이 유독 눈에 들어온 것은 아마 시세계의 변화의 시점에 서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뼈주스'를 상시 복용한다는 말 속에는 이 변화를 위한 극한 고통의 시간이 있었다는 뜻. ‘無爲集’ 연작보다 '나의 작시' 연작이 더욱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이 '나의 작시' 연작에 시인이 제 뼈를 깎는 순간이 옹골지게 새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뼈가 깎여 나간 자리를 쓰다듬으며, 독자로서 그 변화의 방향을 짐작할 수 있을까 하는 욕심이 들었다. 아마 이에 대한 대답은 '나의 작시' 연작 속에 숨어 있을 것만 같았다.
김안 : “내면이 정글이다/…(중략)…/관찰 해부 소화할 것이다”(「나의 작시전」)나 “사물 아닌, 사물이 지닌 원자를 찾기 위해 지새워야 해/더 분석할 수 없을 때까지/쪼개야만 해”(「나의 작시도」) 등 ‘나의 작시’ 연작을 통해서 선생님의 주된 시작 방법 중 하나가 바로 과학적 관찰과 묘사를 바탕으로 한 자연주의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인용한 시구들이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선언처럼 다가왔거든요. 이 선언이 전 시집 ?열매보다 강한 잎?을 극복한 점이자 동시에 전 시집의 시세계와의 차별점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마 다음 시세계를 향한 노정 중 가장 강력한 시적 도구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숙자 : 맞아요, 맞아! 선언에 가깝죠. 왜냐하면 ‘나의 작시’이기 때문에 그 모두 자신에게 내린 정언이자 편달이고 확인이었으니까요. 저는 예나 지금이나 고스란히 그 자세를 고수합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용맹정진인데 극도로 예각적인 현대시는 과학의 눈금이 아니고서는 새로운 표현 자체가 불가능해요. 체세포 하나로 한 마리의 양을 탄생시켰다는 소식, 김연아 양이 트리플 러츠(triple lute) 트리플 토룹(triple toe loop) 트리플 악셀(triple axel)을 실수 없이 해내는 장면 앞에서 저는 번번이 반성했습니다. 그들의 연구와 연습량이 저의 노력과 대조되었기 때문이지요. 아무려나 알레고리나 환상이 대세인 요즘 ‘나의 작시’ 시리즈를 그런 식으로 확실히 몰았다는 게 가히 탈주를 감행한 전투였죠. 자신의 의지를 건 자신과의 전투 말입니다. 다수가 해체할 때 역탈주를 함으로써 실험대에 올려본 부분입니다.
김안: 선생님의 초기작과 최근작 사이에는 절차탁마한 그 오랜 시간의 무게가 느껴질 만큼 시의 기법상 많은 변화가 느껴집니다. 뼈를 깎아 마셨다는 말이 절절히 와 닿을 정도입니다. 기법에 있어서는 모더니즘으로, 제가 느끼기엔 자연주의적 방식으로 가닿아 있고, 시세계는 동양적 사상을 담고 있습니다. 그 사상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시의 형식 또한 날카롭게 세련되게 재련되고 변모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시세계를 효과적으로 담기 위한 오랜 노력의 소산일 것만 같습니다. 선생님 시의 형식의 내용의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이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시나요?
정숙자: 우와! IT세대의 감각이라 빠르시군요. 모더니즘적-자연주의-동양사상, 깨끗이 추려지네요. 여기까지는 그래도 개성을 위한 암중모색의 시기였습니다. 그 다음 단계가 프랙탈구조의 진입이었죠. 그 기법의 작품들은 (발표했지만) 아직 시집으로 묶지 않은 상태입니다. 프랙탈구조의 시, 머릿속에 면도날 두어 통 풀어놓고 흔드는 정도의 긴장을 수반하는 작업이었습니다. 김안 선생의 눈에 세련/재련이 느껴졌다면(고맙습니다) 그것은 ‘뼈주스’의 효과랄 밖에요. 제 시의 형식은 계속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과정을 말씀드릴 수밖에 없는데요, 현재는 프랙탈 구조에서 약간 비껴 포스트입체 구조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프랙탈보다는 좀 편하고 모호해졌죠. 그 모호성도 철저히 계산된 모호니까 저로서는 더욱 머리 굴리는 작업입니다. 어떤 노력을 하는가에 대해서라면 딱히 규정할 수 없고, 다만 24시간 뇌의 플러그를 시에 꽂아두고 산다는 것입니다. 다른 왕도란 없는 듯해요. 그리고 그게 가장 재미있는 게임입니다.
정숙자 시인을 만나본 이들은 다 알겠지만, 시인은 늘 작은 식기함들이 담긴 가방을 들고 다닌다. 함께 식사를 한 후, 언제나 남긴 음식을 그 속에 하나하나 담는다. 또한 시집을 받으면 헌 종이로 만든 편지봉투에 정성들여 답글을 써서 보내준다. 이 생활의 습관들은 어느 새 시인을 대표하는 것이 되었다. 많은 시인들을 만나보았지만, 고약한 술버릇이나 독특한 성격이 아닌 ‘생활’과 ‘습관’으로 먼저 기억이 나는 시인은 내게 정숙자 시인이 유일하다. 그래서인지 시인의 최근 시에서는 생활이 점점 더 깊이 들어가 있다고 느끼게 된다. 자신의 일상이 온전히 시로 승화하는 것. 내가 보는 모든 것이 시가 되는 것. 어쩌면 모든 시인들이 바라는 경지이지 않을까?
김안 : 『감성채집기』, 『정읍사의 달밤처럼』의 세계에서 ?열매보다 강한 잎?의 세계로 오면서 선생님의 시에서 생활의 흔적들을 더 빈번하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열매보다 강한 잎?의 세계로 오는데 무려 8년이란 시간이 걸렸고요. 이런 특징은 『뿌리 깊은 달』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모든 일상들을 시적인 것으로 만드는 탁월한 재주가 있다고 느끼면서도, 이러한 시적 변화가 생활의 변화 때문인지, 아니면 ‘작시’의 기법 변화에 따른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정숙자 : 호오, 갈수록 질문이 어려워지네요. 별 이유는 없습니다. 변신을 꾀하다 보니 심상만으로는 한계를 느꼈던 거죠. 그리고 21세기로 접어들면서부터 ‘은폐의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그 누구도 자신의 현실을 드러내려 하지 않아요. 그럼으로써 격조가 확보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죠. 또 하나, 밖에서 본 장면들을 시의 소재로 등장시키는 경향이 빈번해졌습니다. 그건 사생에 그칠 위험이 따르죠. 물론 거기에도 강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저는 ‘굳이 내가 찍지 않아도 되는, 남의 눈에도 보이는 소재는 놔두기’로 한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숙고한 게 있는데 ‘자기 표출’에 대한 허불허(許不許)였어요. 고민 끝에 ‘인간이 백년을 살지 못하는데 무엇을 두려워하랴’ 결론 내리고 꺼내기 힘든 이야기도 작품에 들이게 됐죠. 단 문학적 장치를 고려하면서요. 『열매보다 강한 잎』이 앞 시집과 8년의 간격이 생긴 것은 기법의 변화 때문이었습니다. 단순히 변화라기보다는 탈각이라고 해야 될 정도로 문체를 바꾸기가 힘들었어요. 자연주의에서 구조주의로, 또한 전통적 서정과 리듬에서 벗어나는 게 무진장 힘들었습니다. 10년 이상 머리를 뮤즈의 신전에 매달았지요. 그리고 지금도 그 끈을 풀지 않고 있습니다.
김안 : 문체, 모더니즘의 세례, 전통적 서정과 리듬에서 벗어나기 등 그 8년 동안 선생님이 쏟아 부은 노력이 충분히 느껴진 시집이었습니다. 동시에 『감성채집기』, 『정읍사의 달밤처럼』의 세계와 그 작법 등이 여전히 배면에 깔려 있어서 독특한 느낌이 들었어요. 어쩌면 『감성채집기』, 『정읍사의 달밤처럼』의 세계가 있었기 때문에 선생님이 아니면 쓸 수 없는 독특한 어법과 문체들이 덕분에 생겨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완전한, 완벽한 변화는 없으니까요. 변화를 꾀하셨지만, 그럼에도 그전의 시세계에서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견지하고 싶으신 부분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바로 그러한 것들 때문에 선생님만의 독특한 시세계가 있는 것 같은데요.
정숙자 : 시가 새로워진다는 것은 기법이 달라진다는 것일 뿐, 본질이 바뀌는 건 아니지요. 지금까지 제 시를 이루어온 기본 틀이 있다면 관념, 이상, 현실성을 잃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새로움이란 창작의 기본이자 궁극이므로 재론의 여지가 없는 사안이고요. 『뿌리 깊은 달』맨 끝에 실린 「산소발자국」첫 행이 이렇습니다. “나무만큼만 서 있다 가자”고요. 제 경우 이 구절이 생활이나 시세계를 가로지르지 않나 싶어요. 뿌리가 삶에 닿아있지 않은 시, 이론에 의거한 상상만으로 허공을 휘젓는 게 전부인 시를 저는 싫어하지 않지만 선호하지도 않습니다. 결국 언어예술이라는 것도 현실과 이상의 조화를 결여한다면 허약이나 허세에 그칠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죠.
김안 : 시세계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유독 이 부분이 궁금했거든요. 최라영 선생 같은 경우, 선생님의 시세계를 세 단계로 나누었습니다. 고전적이고 낭만적인 연가풍의 시에서 단시 형식의 모더니즘 시풍, 그리고 관념적 ․ 사색적 ․ 자기성찰적인 시. 저에겐 특히나 일곱 번째 시집 『열매보다 강한 잎』의 변화가 선생님의 시세계에 분기점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 변화의 진폭이 그만큼 컸다고 느껴지고요. 이런 변화를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보기에는 힘들 만큼 시가 점점 젊어지고 그 내재되어 있는 에너지도 들끓는 느낌으로 향합니다. 마치 작정하고 폭발하듯 시적 에너지를 분출하고 있으신 것 같습니다. 전 벌써 지쳐 가는데, 그저 부러울 따름입니다. 시세계를 이끌어나가는 나름의 방법이 있으신가요?
정숙자 : 최라영 선생의 단계론도, 김안 선생의 분기점론도 바른 구획입니다. 제가 말씀드려야 할 시점은 일곱 번째 시집 『열매보다 강한 잎』부터 그 이후의 변화이겠군요. “마치 작정하고 폭발하듯 시적 에너지를 분출하”는 점에 대해서요. 그렇죠? 간단합니다. “작정하고 폭발하듯”은 어세에서 비롯된다고도 보는데요, ‘나의 작시창’에서 피력한 일체의 직유를 없애면 문장이 간결하게 조여지니까 ‘작정’한 듯 보일 수 있어요. 그리고 “에너지를 분출하듯” 하는 것은 ‘나의 작시도’에서 말한 “심봤다!” 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의 시적 사물을 뚫고 들어가 그 사물이 지닌 원자를 찾고, “더 분석할 수 없을 때까지” 분석하고, 결국 “핵융합 핵분열 핵산란”을 일으키면 됩니다. 물리학 이론과 똑같아요. 기법은 골격이므로 건물보다 설계에 먼저 눈 맞춰야겠지요. 이 역시 끊임없이 ‘뼈주스’를 마시면 될 듯합니다.
김안 :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묻고 싶습니다. 헌 종이를 이용해서 봉투를 만드는 것이나, 염색을 하지 않는 것, 남긴 음식을 포장해오는 것 등등, 이러한 것 외에도 다른 이들은 잘 모르는 습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실천의 방식으로 새롭게 몸에 익히려는 습관이 있으신지요?
정숙자 : 네 있습니다. 싱글턴이 된 후 더욱 세세해지는 것 같은데요. 재활용의 가짓수가 불어난다는 뜻입니다. 얼마 전엔 모 협회에서 ‘정숙자 시인의 문학세계’ 초청강의가 있었어요. 후미의 10분을 할애하여 우유팩으로 만든 모빌과 플라스틱 우유병으로 만든 망우초(꽃)를 선물하여 청중의 기분을 가볍게 했죠. 그 역시 저의 문학세계이니까요. 재활용 품목은 그 외에도 많습니다. 싱글턴! 고독/고요/정화/충만 때문일까요? 모든 게 아름답게 보이거든요. 휙 못 버립니다. 거미줄도 고와서 안 치우고, 쓰레기봉투를 컨테이너에 넣을 때도 ‘안녕’이라고 인사하고, 그러면서 늘 시간이 모자라고, 급기야 “오늘도 나는 다만 그렇게 지구와 연인, 지구의 애인”이라고 쓴 시(‘이슬 프로젝트 9/ 홀로 익는 풀씨처럼’)를 『시작』 겨울호에 발송한 상태입니다.
김안 : 생활 역시, 생활의 습관 역시 나의 문학세계란 말에서 요즘 제가 놓치고 있던 부분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구도자의 모습으로 시를, 내 시가 관통하고 있는 나의 생활을 보다듬는 모습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조심스레 걱정되는 부분은, 생활이 시로 충만하면 그 팽팽한 긴장감 때문에 언젠가 터져버리지 않을까 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물론 이에 대한 나름의 해소 방법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잠시 '시'를 놓고 마음에 휴식을 주는 방법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정숙자 : 에구구! 걱정하시는군요. 그런데 머리가 터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상기한 모든 일들이 긴장이 아니라 즐거움이거든요. 그렇게 사물들과 교감함으로써 날아든 상처나 들씌워진 고통이 정화/승화되며 충만을 이루거든요. 적어도 미물/사물들에게 온정을 베풀면 후유증이 안 남습니다. 마음 다하여 시 한 편을 읽거나 짓는 것과 마찬가지로 맑고 따뜻하지요. 나 홀로 자아를 돌보는 일, 그게 곧 저의 문학세계이며 평온의 숲입니다. 젊은 시절부터 마음에 걸어둔 당호(堂號) 공우림(空友林)이죠. 제 머리, 이제 안심되시나요? 이 허허롭고 이상한 삶에서 겨우 구축한 그 긴장과 탄력을 놓친다면 그때 오히려 멘붕이 올 듯합니다.
김안 :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신지요?
정숙자 : 따로 설정한 건 없어요. 이미 살아온 패턴대로 조용히 살다가 어느 날 자연이 부르면 뻐르적대지 않고 따라갈 예정입니다. ‘뼈주스’도 웬만큼 마셔봤으니, 세상의 메커니즘도 어느 정도 읽었으니, 70억:1이 아니라 1:1로서 언제 어디서든 ‘홀로 익는 풀씨처럼’ 지구를 바라보며 감사하며 사랑하려 합니다. 만일 한가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자녀들과도 좀 만나면서요. (…) 바쁘신 중에 질문지 만드느라 애쓰셨어요. 김안 선생의 앞날에 행복과 문운이 함께 하시길 빕니다. 고맙습니다.
정숙자 시인이 마셨다는 '뼈주스'의 맛은 어떨까? 그 고통은 어떠할까? 제 스스로 깎은 뼈를 만지는 감촉은 어떠할까? 아직 나는 아직 그 무엇도 상상할 수 없을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숙자 시인은 나를 대할 적마다 인생의 선배나 선배 시인보다는 같은 길을 가는 동료 시인으로 존중하며 한마디 한마디를 건넸다.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대단한 일인지, 내가 정숙자 시인의 나이에 다다르지 않는다면 알 수 없을 것이다. 대담을 통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도리어 나는 정숙자 시인에 대해 아는 것이 더 없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이 알 수 없음이, 바로 정숙자 시인만의 깊이이고 정숙자 시인의 시세계가 가진 충만하게 열려 있는 가능성이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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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안/ 1977년 서울 출생. 2004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오빠생각』『미제레레』가 있음. 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및 동대학원 석사 과정 졸업.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 『뿌리 깊은 달』『열매보다 강한 잎』외, 산문집『행복음자리표』『밝은음자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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