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에서 날다
정숙자
절벽이란
지옥의 입구였다
나는 조류가 아니었기에
한 눈금 한 눈금 서슬 푸른 벼랑이 밤사이에 몇 척씩 자
라 올랐다
그 수치는 날더러 꺼지라는 암호였다 질시였다 박해였다
나는 침묵했다
침묵 속에 절벽을 구겨 넣었다
절벽은 구겨지면서 내 속울음보다 더 붉게 오열했다
그런 절벽도 처음에는 우리 집 앞마당 버금의 지반이었다.
그러나 지반은 언제라도 지진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 나는
뒤늦게 날개를 마련하는 일에 착수했다. 비상(飛翔)만이 별의
별 절벽들을 일거에 그어버릴 도구였기에. 그리고 폐활량
을 늘렸다.
심신만 건강하다면
내 식탁과 컴퓨터만 깨지지 않는다면
절벽은 능히
놀 만한 장소였다
물경, 절벽이 아닌 시간은
백색소음 질척거리는
저잣거리일 뿐이었다
-『21세기문학』2009년 봄호
--------------------------
* 시집『뿌리 깊은 달』에서/ 2013. 2. 28. <(주)천년의시작>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제8시집 · 뿌리 깊은 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희망값/ 정숙자 (0) | 2013.11.30 |
---|---|
뿌리 깊은 달/ 정숙자 (0) | 2013.11.29 |
나의 작시욕(作詩慾)/ 정숙자 (0) | 2013.11.18 |
나의 작시기(作詩記)/ 정숙자 (0) | 2013.11.14 |
정6각형의 사회/ 정숙자 (0) | 2013.1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