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시집 · 뿌리 깊은 달

절벽에서 날다/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13. 11. 26. 13:17

 

 

     절벽에서 날다

 

    정숙자

 

 

   절벽이란

   지옥의 입구였다

   나는 조류가 아니었기에

 

   한 눈금 한 눈금 서슬 푸른 벼랑이 밤사이에 몇 척씩 자

라 올랐다

   그 수치는 날더러 꺼지라는 암호였다 질시였다 박해였다

 

   나는 침묵했다

   침묵 속에 절벽을 구겨 넣었다

   절벽은 구겨지면서 내 속울음보다 더 붉게 오열했다

 

   그런 절벽도 처음에는 우리 집 앞마당 버금의 지반이었다.

그러나 지반은 언제라도 지진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 나는

뒤늦게 날개를 마련하는 일에 착수했다. 비상(飛翔)만이 별의

별 절벽들을 일거에 그어버릴 도구였기에. 그리고 폐활량

을 늘렸다.

 

   심신만 건강하다면

   내 식탁과 컴퓨터만 깨지지 않는다면

   절벽은 능히

   놀 만한 장소였다

 

   물경, 절벽이 아닌 시간은

   백색소음 질척거리는

   저잣거리일 뿐이었다

 

    -『21세기문학』2009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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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뿌리 깊은 달』에서/ 2013. 2. 28. <(주)천년의시작>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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