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 프로젝트 -2
정숙자
스카치테잎// “←양해 바랍니다. 재활용 스카치테잎입니다(자연보
호!)” 이렇게 적힌 제 우편물을 받아보신 분 있을 거예요. 오늘은 여기
대한 말씀을 올리려 합니다.
언제부턴가 우체국에 끈이 사라졌어요. 여러 권의 책을 부칠 때나 작
은 상자를 포장할 때 예전엔 끈으로 묶었지요. 이제 그러면 안 됩니다.
담당 직원이 묻지도 않고, 일고의 망설임도 없이 가위로 싹둑싹둑 잘라
버리더군요. 당황한 눈을 껌벅거리기도 전에 직원은 의젓이 소포물을
스카치테이프로 감았습니다. 배달 도중 훼손될까봐 몇 바퀴 더 돌려
붙이며 친절히 설명도 해줬습니다.
“요즘은 자동화가 돼서 끈으로 묶으면 기계에 걸려요.” 물론 이해했
만 끈과 본래의 강과 썩지 않는 쓰레기를 곱빼기로 안아야 하는 흙빛이
곰곰이 불쌍했습니다.
요즘은 택배로 들어오는 물건치고 무엇 하나 스카치테이프로 맥질하
지 않은 게 없습니다. 엔트로피가 증가할 따름이지요. 궁리 끝에 저는
스카치테이프도 찬찬히 떼어내어 한 번 더 살려 쓰기로 했습니다. 결국
올봄에 낸 시집『뿌리 깊은 달』을 삼백사십일 권이나 재활용 스카치테
이프로 봉했어요. 영 미안할 정도로 깨끗잖은 스카치테이프에는 그렇게
양해를 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런 일은 이어지고 또 반복이 되겠지요. 저의 시력이 총총
하고 손끝이 살아 움직이는 한, 남은 우정과 보람과 신의는 한 줄기 맑은
물에 바쳐질 것입니다.
* <포엠포엠> 2014-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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