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우정
정숙자
세상은 시종 캄캄한 밤이다. 유난히 큰 별 하나가 천공을 가로지르는 사이 우리는 잠시 어둠을 잊을 뿐이다. 이렇듯 어둠이 전제, 또는 내재된 삶에서 벗이란 얼마나 따뜻하고 밝은 존재인가. 시간이 어느 모퉁이를 지날지라도 함께 웃음 지을 벗이 있다면 우리는 이미 우주의 절반을 얻은 것이리라, 아니 우주를 다 얻은 것이리라.
서편의 달이 호숫가에 질 때에
저 건너 산에 동이 트누나
사랑빛이 잠기는 빛난 눈동자에는
근심 띈 빛으로 편히 가시오
친구 내 친구 어이 이별할거나
친구 내 친구 편히 가시오
그대의 꿈에 비치이던 그 달은
아침 비칠 때 어디로 갈까
검은 구름 위로 이리저리 퍼질까
장미 동산 안에서 숨어 있을까
친구 내 친구 어이 이별할거나
친구 내 친구 편히 가시오
-고별의 노래-
이 노래는 ‘고향 생각’과 함께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에스파냐 민요다. 원제는 ‘화니타(Juanita)'로 원작사자는 영국의 노튼 부인(1808~1887)인데, 화니타라는 소녀의 이름만 친구로 바뀌었을 뿐 다른 가사는 거의 원작과 비슷하다고 한다.
이 노래를 가지고 시를 논하려는 까닭은, 시와 민요는 그 근원이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민요는 민중, 곧 보통 사람들의 노래다. 문자가 발달되기 이전부터 구전된 민요야말로 최초의 시이며 현대시의 출발점이었다. 민요는 작사․작곡자도, 악보도 없이 윗세대로부터 아랫세대로 자연스럽게 전해지는 것이지만 이 노래는 좀 다르다. 우리에게 알려진 또 하나의 에스파냐 민요 ‘고향 생각’ 작사자가 홍난파인 점으로 미루어, 노튼 부인 역시 아름다운 외국 곡에 가사를 붙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곡이 아니라 시의 접근인 이 지면에서 노튼 부인의 소개가 여기 그친 데 대해 양해를 구한다. 혹 노튼 부인에 대한 자료를 소유한 독자가 있으면 이 사람에게도 읽어볼 기회를 빌려주었으면 한다.
친구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우정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고별의 노래’ 앞에서 벗이라는 글자를 들여다본다. 벗! 벗은 또 하나의 나다. 벗은 캄캄한 세상을 걸어갈 때 등불의 기름을 나누어줄 수 있는 사람이요, 세상이 비난할 때 방패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며,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을 때 손잡아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벗이 한 발 앞서더라도 시새우지 않으며, 형편이 피었을 때 기쁨을 함께 하며, 비단옷을 입게 되더라도 그 영광을 축하하기 위해 아껴둔 술을 들고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사람이다. 생애에 이런 벗 하나를 얻었다면 그가 곧 맑은 공기이며 우주가 아니겠는가. 또한 그 벗을 잃지 않고 평생을 건너간다면 그가 곧 참인간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이 세상에서 스승 없음은 부모 없음과 같고, 벗 없음은 형제 없는 처지와 다르지 않다.『내훈(內訓)』의 「모의장(母儀章)」을 보더라도 “사람이 살아나감에 있어 안으로 어진 어버이와 형이 없고, 밖으로 엄격한 스승과 벗이 없다면 능히 성공하는 자가 적을 것이다”하였다. 한 길을 택하여 걷는 동안 이와 같은 혹한을 겪어본 사람이 아니면 어찌 뼈에 서린 고독을 논할 수 있겠는가. 친구는 형제처럼 숙명적 인연도 아니요, 이성의 그것처럼 미혹된 감정이 끈을 옭아주지도 않는다. 오직 자기 자신이 존경과 신뢰의 바탕을 지니고 있어야만 또 하나의 자기인 친구를 얻을 수 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신뢰와 존경이 무너진다면 결국 멀어지고 말 것이다. 서양 속담에도 “소금 석 섬을 함께 먹어본 사람이 아니면 믿지 말라” 하였듯이 진실된 친구를 얻는 길은 우선 진실된 자기 자신을 얻고 난 다음의 일이다. 하루라도 자기 성찰을 그르친다면 어느 하늘 아래 아름다운 벗이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설령 그가 나를 떠나더라도 원망을 모으지 말며, 내일을 잠그지 말자.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따뜻함을 채우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곤충의 관절 같은 매 순간 위에 너나없이 기도를 모아야 할 것이다.
내가 쑤요우주(蘇有洲) 씨를 만난 건 금년 여름 중국에서였다. 아시아 시인대회차 갔던 관광지 서안에서 돈황까지는 멀고 더웠다. 아침부터 밤중까지 고비사막을 버스로 달렸는데, 나는 그날 처음 내 고향 김제t벌보다 너른 땅이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나이토록 우리 집 천장이 보리수 그늘이라고 여기며 해외여행에는 곁눈도 주지 않은 까닭이었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가도가도 삼백육십도 원을 이룬 지평선 안에서 지구의 중심이었다. 만일 뜻밖의 사태가 발생한다면 함께 탄 스물네 명이 최후의 동행일 것이었다. 벌거벗은 채 드러누워 깨어나지 못하는 사막. 기적처럼 풀린 한 필(疋)의 아스팔트… 버스는 화장실에 들르거나 식사시간에만 멈추었는데 그때마다 목례를 나눈 사람이 바로 운전석의 쑤요우주 씨였다. 그는 큰 키에 건장한 체격으로 오십은 넘어 보였다. 입술이 투박하고, 피부는 탔고, 흘흘한 의복이었으나 표정만은 깊고 맑았다. 자정을 넘어 지하묘지에 갔을 때에도 그는 온정어린 얼굴로 우리를 편안케 했다. 그런데 바로 그 무덤 앞에서 엉뚱하게도 한 시인이 노래 한 곡을 뽑더니만 쑤요우주 씨에게 화답을 요구하는 게 아닌가. 그는 느닷없는 주문에 겸연쩍어 하였으나 우리의 박수를 어쩌지 못하였다. 칠흑 같은 지표면에서 도저히 그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울림의 노래가 별들이 쏟아지는 하늘로 사막으로 은은히 퍼져나갔다.
민요에는 오랜 세월 공감이 자리하였다. 시대마다 새로운 주의(ism)가 나타났지만, 그 새로움이 태초의 진정성을 뛰어넘는 것은 아니었다. 과학의 새로움은 생활에 도움이 될만한 물건들을 생산해냈다. 그러나 시문학은 그 반대편에 놓이고 말았다. 독자와 유리되고 시인 스스로도 매우 복잡한 은유의 구도 속에 갇히고 말았다. 이런 문예사조를 수용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이제 머리를 어렵게 하는 시가 아니라, 머리를 쉬게 하는 시가 그립고도 그립다. 진정성이 사라져 가는 오늘의 시를 읽어도 읽어도 눈이 시린 것은 나 혼자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이 대목에서 시와 시인, 그리고 세상에 관한 소회를 더듬어 보려고 한다. 이들 관계에서 가장 바람직한 모습으로는 작품과 작가가 동시에 알려지는 일일 것이다. 그 다음이 작가는 알려지지 않더라도 작품만은 널리 알려지는 일, 그리고 맨 나중이 작품은 한미한데 작가의 이름만이 무성한 경우라고 본다. 노튼 부인의 경우는 여기서 두 번째에 해당한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것이 첫 번째보다도 귀하고 숭고하다. 우리 현실에서 언제부턴가 소수의 시인을 제외하고는 작품은 공허한 채 작가만이 유명하다. 이탈리아의 사상가 체자레 롬브로조의 말대로 “사회가 천재를 빠뜨리는 것은 죄악이다(『천재론』)” 나 역시 어설픈 시를 들고 나다니며 정작 큰 재목을 질식시키는 칡넝쿨은 아닐까 주위를 둘러보곤 한다. 비록 세상이 눈을 주지 않더라도 작품만 반듯하다면 에밀리 디킨슨처럼 서랍 속에 원고를 넣고 죽은들 그게 무슨 허무가 되겠는가. 명예보다는 좋은 작품을 위해 골몰하는 것이 우선의 요건이다. 지금도 전 세계가 즐겨 부르는 민요 ‘고별의 노래’ 뒤에 없는 듯 살아 있는 노튼 부인을 우러러볼 따름이다.
쑤요우주 씨의 미소는 날아가지 않을 만큼 단정하고 소박하였다. 나는 간간히 수첩과 볼펜을 꺼내어 서투른 한문으로 필담을 나누었는데 그의 문장과 글씨 또한 균형이 우아하였다. 처음 내 소개를 하기 위해 이름을 써 보이자 그 끝에 여사(女士)라는 말을 달아놓는 것이 아닌가.
떠나오던 날 아침. 버스가 출발하기 직전. 나는 미지의 시인과 나누려고 가져간 선물을 그에게 주었다. 그런데 그 잠깐 사이에 쑤요우주 씨는 조그만 벼루 하나를 나에게 내미는 것이었다. 자신이 베푼 친절값으로 받아 마땅하다고 여길 법한, 하찮게도 여길 법한 나의 미미한 선물을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보답하고 싶어한 그의 심지는 지고의 인격이었다. 그는 우리를 공항에 내려주었으나 돌아서지 못하였다. 게이트 앞에서 한 시간 이상을 기다린 다음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야 헤어졌다. 그 즉시 우리는 그를 잊어버리고, 대기실에서 다시 삼사십 분을 기다린 다음 탑승대를 향해 걸어나갔다. 그때 “아니, 저기 아저씨가 아직도…” 하는 소리가 들렸다. 흰 나무울타리 밖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서 있는 쑤요우주 씨가 한눈에 들어왔다. 쫓아가 다시 작별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모자라 손을 흔들며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비행기 앞에 섰을 때 약간의 시간이 있으니 손이라도 한 번 더 흔들고 오자는 한 시인의 귀띔! 우리는 몸을 날렸다. 이미 가고 없어야 할 쑤요우주 씨가 버스의 문을 열어놓은 채 운전석에 앉아 이쪽을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차마 비행기보다 먼저 자리를 떠날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마지막이 될 손인사에 담뿍 마음을 담아 보냈다.
“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德不孤必有隣-공자)” 내가 먼저 그의 친구가 되어주지 않고, 그가 나의 친구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것은 아예 친구 얻기를 포기한 셈이다. 맑고 따뜻한 시와 그 시를 닮은 시인을 만나고 싶은 요즘이다. 아무리 재기 발랄한 시일지라도 그 내용에 진정성이 빠져 있다면 예술의 제1덕목인 감동을 결여하는 것이리라. 헤르만 헤세는 일찍이 2000년대를 예견해 『유리알 유희』속에 명상과 우정을 새겨 놓았다. 사회의 정신적 리더인 작가들은 세상을 위해서나 자신의 체온을 위해서도 N.하르트만이『미학』에서 강조했듯이 관조를 통한 시를 한 번쯤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나는 고별의 노래와 함께 쑤요우주 씨의 인품을 자주 떠올리곤 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하루 길동무에서부터 무덤친구라고 여긴 이에 이르기까지 내 영혼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지 않은 이는 단 한 사람도 없었던 것 같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향긋한 한순간은 그대로 삶 속의 시다. 어디선가 찌르르 찌르르 귀뚜라미 소리가 난다. 외모는 수수했지만 행동으로써 진실을 보여준 쑤요우주 씨의 짧은 우정을 나는 오래 기억하게 될 것이다.『장자』의「산목」편에 나오는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이 글을 마칠까 한다. “군자의 사귐은 담담하기가 물과 같고 소인의 사귐은 달콤하기가 술과 같다. 군자는 담담하되 더욱 친하고, 소인은 달콤하되 절교한다(君子之交는 淡如水요, 小人之交는 甘若醴라. 君子는 淡以親하고 小人은 甘以絶이라).
*『애지』2002-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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