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철학
정숙자
고통은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할 하나의 길이다. 정밀하게 마음 쓰며 넘어설 수밖에 없는 산이다. 누가 뭐래도 고통은 희로애락 중에서 가장 중심이 깊다하겠다. 지혜와 권세와 영화를 한 몸에 누렸던 솔로몬도 고통의 자리에 머물러서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다음의 글을 자신 안에서 읽었던 것이다.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連)하여 흐르느니라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이전 세대를 기억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가 기억함이 없으리라
나 전도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마음을 다하여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궁구(窮究)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구부러진 것을 곧게 할 수 없고 이지러진 것을 셀 수도 없도다
내가 마음 가운데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큰 지혜를 많이 얻었으므로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자보다 낫다 하였나니 곧 내 마음이 지혜와 지식을 많이 만나 보았음이로다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과 미련한 것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성서』중에서, 전도서 제1장 -
너무나도 잘 알려진 솔로몬에 대해서는 B.C. 10세기 사람이라는 것 외에 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줄 안다. 그의 출생이나 종교적 배경은 접기로 한다. 이 글에서 취하고자 하는 것은 철학을 겸한 시이기 때문이다. 좋은 문학작품은 대개 철학을 쥐고 출발하여 단단한 결정을 도출해낸다. 그리고 그렇게 얻어진 작품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그 작품 한 편을 얻기까지, 혹은 그런 작품 세계에 진입하기까지 작가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악조건이 호조건’ 이라고 여기며 마치 여의주를 물고 있는 어족인 양, 그 고통이 여의주인 양 이를 악물고 참으며 안으로는 승화를, 밖으로는 성장을 이끌어야 한다. 전도서 제1장은 내 기억 속에서 가장 깊은 울림의 시이다. 편지에 여러 번 적어보내기도 하고, 공책에 베끼기도 하며, 나는 무시로 드나드는 고통을 의지하거나 수습하곤 했다. 특히 지혜자 솔로몬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헛됨’이라는 형용사를 한 문장에 네다섯 번씩이나 반복한 까닭을 헤아리면서 하잘것없는 나의 시 나부랭이들이 무엇일까 하는 절망에 젖기도 했다. 더욱이 삼천여 년 전의 이 깊은 사고와 문장 앞에서 현대라고 하는 장소가 슬픈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나는 나대로의 전도서를 쓰기 위해 노력을 다하는 게 내 삶에 대한 예의일 거라고 구실을 붙여가며 이렇듯 끙끙거리고 있는 것이다.
전도서 제1장은 랜섬이 말한 관념시이다. 하지만 사상 관념이 장미의 향기처럼 느껴지는, 즉 예술화를 거치지 않은 상태의 시라고 하더라도 결코 추상에 치우치거나 심상이 빈약하지 않다. 에즈라 파운드는 “방대한 양에 달하는 작품을 쓰는 것보다 한평생 동안 단 한 개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발언한 적이 있는데, 이 부분에서도 솔로몬은 좋은 보기가 되고 있다. 전도서 제1장은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과 더불어 가장 오래된 시적 표현의 철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전도서 제1장에는 ‘만물의 무상(無常)을 가르치는 전도자’ 라는 부제가 붙어 있기도 하다. 철학적 사고의 시작이 어디인가는 두말할 나위도 없이 우리네 삶의 난관일 터이다. 지극한 고통과 고뇌와 고독을 거치면서 삶에 대한 의문과 인식이 생겨나고, 그 생각들이 가지를 쳐 자기 나름의 개성을 확보한 예술로 피어나는 것이리라.
시가 짧은 형태의 글이라고 해서 철학의 깊이를 도외시한다면 그것은 한낱 말장난에 불과하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철학자가 좋은 시를 쓸 수 있다는 등식이 성립되는 건 아니다. 플라톤이 시를 쓰지 못해서 철학자가 되었다는 버나드 쇼오의 독설에 나는 굳이 반대하고 싶지 않다. 또한 이 짓궂은 얘기를 발전시켜 시인 추방론에까지 도달하는 우를 범하고 싶지도 않다. 어쨌든 나는 세상이 어디로 돌아가든 진지한 사고에 패를 건다. “깊은 철학자가 아니고서는 위대한 시인이었다는 그런 사람은 일찍이 없다”고 짚은 코울리지의 말도 또한 참이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시인의 철학적 태도에 기법을 추가한다. 에즈라 파운드는 기법을 일컬어 “인간의 성실성에 대한 검증물”이라고까지 못 박지 않았던가. 말의 쓰임새가 예각적이지 않고서 시의 완성도를 기대하는 것은 계란에서 봉황이 부화되기를 바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고통이야 자의와 무관하게 닥치는 것이지만, 시어를 다루는 기법만큼은 시인 스스로가 만들어서 지녀야 될 고뇌이다.
하지만 아무리 이치가 그렇더라도 나 역시 생활이 주는 고통은 달갑지 않다. 시인이 아니어도 좋으니 걱정 없는 삶이었으면 좋겠다싶을 때가 있다.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다는데 애면글면 시에 붙들려 있는 나 자신이 얼마나 부질없는 포말인가 회의에 빠져들 때도 있다. 그러나 이 세상은 누구에게나 고해라는 불교적 정의를, 시에 관한 한 스스로 선택한 길임을 상기하고는 마음을 바로잡는다. “글이란 마음에 걸림이 있어 우러나오는 것이다. 하늘도 마음에 걸림이 있어 봄에는 새를 시켜 울게 하고, 여름에는 천둥을 시켜 울게 하고, 가을에는 풀벌레를 시켜 울게 하고, 겨울에는 바람을 시켜 울게 한다”는 한퇴지의 말. 하물며 사람에게랴. 다듬어 볼 만한 말 한마디, 낮아지는 마음 한 귀퉁이엔 고통이 밑동으로 서 있다. 숫자만이 계산인 것은 아니다. 이 세상 그 무엇 하나 거저 얻어지는 것이란 없다. 세월의 급류 속에서도 떠내려가지 않고 우뚝 서 있는 작품들은 철학의 기초가 탄탄하다. 그런 의미를 묶어서라도 고통을 친구 삼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이다. 그러나 철학적 토대와 기법을 갖췄다할지라도 또 하나 중요 요소인 상상력이 빠진다면, 시의 오묘함과 폭을 펴 보이지 못할 것이다. 전도서 제1장은 기독교 교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믿음 소망 사랑 등의 용어가 단 한 군데도 들어가 있지 않다. 완벽한 철학적 관념이며 구구절절 사개가 잘 맞춰진 시적 표현이라 할 만하다. 여기서 나는 솔로몬뿐 아니라 이름을 남기지 않은 먼 옛날의 역자에게도 고마움을 전해야겠다.
홍자성(洪自成)이 지은 『채근담』을 읽다가 눈가에 새겨 둔 부분이 있다. “문장을 공부하여 궁극에 이르면 다른 기이함이 없고 다만 알맞을 뿐”이라는 말이다. 의미 압축이 방대하면서도 어느 한 군데 난해하거나 못미치는 음절이 없는 솔로몬의 전도서 제1장이 글 읽는 자로서 어찌 기쁨이 아니랴. 고통을 통해 고통을 벗은 이들은 한결같이, 미물에게도 사람과 똑같은 애정을 부여하였다.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는 자신의 화형대에 치솟는 불길을 향해서까지 “오, 나의 형제인 불!” 이라고 했으며, 심지어 붓다는 윤회의 과정을 빌어 사람과 축생이 몸을 바꾸어 입는다고 설하였다.
내 어린 시절 고향집 대문을 열면 바로 탱자나무길이 있었다. 여름날 아침 그 곳을 지나치자면 마악 벌레의 몸을 벗는 나비를 종종 볼 수 있었다. 흠뻑 이슬이 묻은 잎새 사이에서 얇고 축축한 날개를 내밀며 비비적대던 광경이 어제처럼 생생하다. 그때 그 모습이 어린 나에게는 결코 도약이나 성취 같은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약하게, 힘겹게 버르적거리는지 불쌍하다는 느낌이 충격으로 얹힐 따름이었다. 그 나비가 저 유명한 그리이스 신화의 ‘프시케’를 그려낸 영혼일 줄이야!
어린 시절의 놀라움이 잠재의식 속에 스며든 때문일까. 나는 지금도 고통이나 인내라는 어휘를 만나면 맨 먼저 나비가 떠오른다. 그러니까 나에게 있어서 나비는 고통의 상징인 셈이다. 나비와 나의 인연은 탱자나무 길뿐만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는 여름방학 숙제로 벌레를 기르면서 일지까지 쓰도록 하신 것이다. 나는 조그만 밀짚상자를 만들어 그 안에 탱자나무 가지를 꺾어다 넣고 아기벌레 한 마리를 가두어 길렀다. 매일 몸길이를 재어가며 그 모양을 적기도 했다. 까뭇하던 벌레가 손가락만큼 굵어지면서 푸른색으로 꿈틀댈 때는 정말이지 징그럽고 무서웠다. 그러나 탱자나무 이파리를 갈아주며, 밤이면 바람과 별과 이슬도 만날 수 있도록 뒤꼍 앵두나무 가지에 걸어 두곤 하였다. 이윽고 어느 날 아침 녹색 껍데기가 호랑무늬 날개를 내미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의 첫 나들이를 위하여 밀짚상자를 열었다. 그리고 그가 아기 때 살았던 탱자나무에 옮겨주었다. 일지에는 나비가 되어 날아갔다고 쓰면 그만일 테니까 말이다. 지금 같다면야 “나비야, 안녕!” 하고 인사라도 했으련만 힘든 ‘벗어남’을 한참동안이나 바라보았을 뿐 날아가는 모습도 보지 않고 돌아섰다. 날개가 마르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나비들은 오늘도 그와 똑같은 과정을 거쳐 신(神)의 시를 펼쳐 보이고 있을 것이다.
앙드레 지드는 「전원 교향곡」에서 나비를 일러 ‘날으는 꽃’이라고 했거니와, 실로 나비의 아름다움은 그 정신에 있다. 날개를 얻기까지의 인내가 그렇고, 겸손이 그러하다. 나비는 날개를 얻었을지라도 창공을 원하지 않으므로 허욕이 없다. 벌레였을 적에 기어다니던 꽃밭을 떠나지 않고, 꽃들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돕는 점으로 보아 배신도 없다. 소리를 내어 떠들지 않으니 과시가 없으며, 배불리 먹거나 끼니를 저장하지 않으니 또한 탐냄이 없다. 곤충학자의 말에 의하면 나비는 성충이 된 뒤에는 식사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가벼운 간식 정도에 그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비는 날개가 있으되 벌처럼 누군가를 쏘아댈 침이나 뿔도 소유치 않으므로 무저항주의자요, 새들이 가진 부리나 발톱도 없으니 살생이 없다. 어디를 살펴보아도 모난 구석이라곤 없다. 그 모든 없음 속에서 나는 그들의 진정한 미와 신의를 발견한다. 그들이 곧 성(聖)이며 선(仙)이 아니겠는가. 그들이 날고 있는 이 세상이니만큼 그들을 닮은 사람들 역시 곳곳에 살고 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의 고통을 알고 있는 한 나의 고통도 참을 수 있는 것이며, 미숙한 시나마 다듬으려 할 것이다. 생의 한 바퀴를 관조한 솔로몬의 전도서 제1장과 나비가 여기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나의 남은 시작(詩作)과 철학은 외롭지 않다.
영웅은 그 출생이 비천하고, 생애가 비참하고, 죽음이 참담해야 한다던가. 깎아지른 어둠이 밀리더라도 우리는 좌절을 이겨내며 미래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나비를 기르던 내 어린 시절은 어머니가 아궁이 가득 보릿짚 때는 소리에 아침이 열리곤 했다. 보릿대들이 마디마디 튀면서 내지르는 외침이 온 집안을 흔들었던 것이다. 빨랫줄에 모여 앉은 수십 마리 제비들은 또 어찌나 야무지게 목청을 가다듬는지 앞산 뻐꾸기 소리가 묻혀버릴 지경이었다. 삶이니 문학이니 철학이니 하는 언어가 움트지 않았던 시절, 그 요요한 아침이 나에게는 근심 없는 복숭아밭이요, 에덴이 아니었던가. 하루의 출발을 어김없이 채근하던 제비들, 이슬과 나비들, 그리고 다시는 뵈올 수 없는 어머니가 몹시 그리운 오늘이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는 매 순간일지언정 우리는 또 내일을 위해 저무는 시간을 손질해야 할 것이다.
*『애지』2002-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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