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편지
정숙자
편지는 은허문자 이래로 가장 순수한 글이다. 대중에게 읽힐 것도 아니요, 오로지 한 사람이 또 다른 한 사람에게 마음을 선사하는 일이다. 자판만 두들기면 상대방 컴퓨터 모니터에 휘뜩 들어가 박히는 e-메일과는 다르다. 나만이 선택한 종이가 다르고, 나만이 굳혀온 필적이 다르고, 나만의 기호인 잉크 색이 다르다. 뿐일까, 편지에는 유일무이의 지문이 담긴다. 누군가 한 통의 편지를 받아든 순간 두 사람의 손이 포개어진다. 시내버스 요금에도 못 미치는 우표 한 장이 정갈한 육필과 함께 어느 우편함에 꽂히었다면 그것은 촉수를 잴 수 없는 빛이 이 세상 한 귀퉁이를 따뜻하게 밝히고 있는 것이다.
하늘 높이 슬픈 노래가
저 철교 위를 흐른다.
하늘 높이 슬픈 노래가
저 철교 위를 흐른다.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나는 어디론지 떠나가고만 싶어진다.
나는 정거장으로 내려간다.
내 심장이 입으로 치밀어 올라온다.
나는 정거장으로 내려간다.
심장이 입으로 치밀어 올라온다.
나는 객차를 바라보면서
남쪽으로 날 데려다주었으면 싶어한다.
주여, 푸른 향수란
이건 정말 기막힌 것이올시다.
푸른 향수란
정말 기막힌 것이올시다.
나는 터지려는 울음을 참고
입을 벌려 웃어봅니다
― 향수(鄕愁) ―
이 시를 지은 랭스턴 휴즈(Langston Hughes 1902~1967)는 미국의 흑인 시인이다. 그는 중학교 때 ‘학급 시인’으로 선출된 이후 일생 동안 흑인들의 영혼을 달래고 일깨우는 글들을 썼다. 흑인다움의 자부심 도저한 시와 더불어 할렘의 셰익스피어로 불리울 만큼 소설․희곡․평론․역사성 깊은 산문 등 거의 모든 분야의 글을 썼다고 한다. 오늘날 흑인의 영성을 지칭하는 ‘소울(soul)’이라는 용어도 랭스턴 휴즈가 맨 처음 시에 도입했다는 기록이 있다.
시는 ‘무엇을’ 썼느냐보다 ‘어떻게’ 썼느냐가 문제다. 소재가 무엇이든 ‘어떻게’를 잘 다루어야만 한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무엇’과 ‘어떻게’를 맞물려 구슬린다면 견고한 작품성의 확보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근원적 시심인 <간절성>은 ‘무엇’, ‘어떻게’ 등의 궤도를 사뿐히 초월한다. 앞에 놓인 ‘향수’가 바로 그런 시가 아닐까. <간절성>은 기법을 돌볼 겨를이 없다. 폴 발레리도 “찰나에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삼켜버리는 일. 그것보다 더 창의적이며 진실된 창조력이란 없다”고 언급하였다. 쉬운 언어들로 연환된 랭스턴 휴즈의 ‘향수’가 곧 그에 해당하는 시일 성싶기도 하다.
그는 농장 인부, 심부름꾼, 선원, 문지기, 요리사, 급사, 웨이터, 엘리베이터 보이 등 밑바닥 생활을 전전하면서도 쉼 없이 창작에 몰두하였다. 그뿐 아니라, 전 세계에 살고 있는 친구들에게 줄곧 엽서나 편지를 띄워 보냈다. 전혀 만나본 적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편지를 통해 한 번 알게 되면 그 우정을 키워가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며, 죽음이 서로를 갈라놓을 때까지 평생지기로 지켜내는 인간이었다고 한다.
외로움을 모르거나 그립지 않은 사람은 편지와 멀다. 나는 오랜 세월 군인인 남편을 따라 전방을 전전하며 인생의 어둠을 읽어야 했다. 딱히 참전(參戰)의 결과만은 아니겠지만, 남편의 삶에 대한 독해와 방식은 매우 특이하였다. 군인가족이라는 비탈과 개인적 경사(傾斜)가 겹친 이중적 난해구조 안에서 나의 결혼은 곧바로 철학입문이거나 수행의 길에 들어선 것이었다.
너무 잦은 이사로 인해 늘 낯선 고장들… 따뜻이 기댈 수 없는 시간들… 해변에 밀려나온 조개껍질만 바라보아도, 시근만 남은 달이 어스름하늘에 손톱자국만 끼쳐놓아도 고향집이 그리웠다. 그런 세월 속에 하루같이 편지를 띄워준 내 동생 인자(仁子)가 없었다면 오늘의 나는 다른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인자는 하늘을 뒤져도 더 나오지 않을, 하나뿐인 동생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에도 싸우지 않았다. 그리고 인자는 내 경우와는 달리 일찍이 문학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무난히 영문학 석사 학위를 받은 다음 소설가가 되었다. 우리는 한국의 브론테 자매가 되자고 귀를 맞추며 자랐던 것이다. 나는 하루에 대여섯 통의 편지를 띄운 적도 있다. 부치고 와서 또 쓰고… 부치고 와서 또 쓰고… 그토록 힘겹게 해가 넘어갔던 것이다. 이십 여 년 동안 보내온 인자의 편지가 삼공바인더로 오십 권에 달한다. 우리가 그리도 많은 편지를 주고받았던 것은 나의 삶이 그만큼 신산했기 때문이었다.
“하늘 높이 슬픈 노래가 저 철교 위를 흐른다.” 이 절절한 가락은 그 무렵 인자와 내가 몹시도 좋아했던 시다. 이 시에 흐르는 비극은 언제 읽어도 위안이자 격려였다. 에밀리 디킨슨도 말했듯이 이론 이전에 ‘전율’을 느낀다면 그것이야말로 제대로 된 문학이 아니겠는가. 랭스턴 휴즈가 흑인이라는 점만으로도 내 슬픔들은 중심을 잡고 진화하곤 하였다.
현대는 눈을 뜬 채 비단 한 필을 잃어버렸다. 바람이라도 더 불거나 비 오는 날, 소록소록 눈 내리는 날이면 누군가의 이름을 떠올리게 되고, 그런 날 밤이면 여지없이 책상머리에 불이 키어지지 않았던가. 공연히 우편함을 열어보기도 하고, 비어 있는 우편함을 닫고 나서는 허전함을 메우기 위해 책을 읽거나 산책을 나서기도 했던 것 같다.
어느 누구에게 빼앗긴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잃어버린 그 따뜻한 빛을 박물관으로 보내지 말자. 한 달에 한 번, 아니 일 년에 한 번이라도 떨어져 사시는 부모님, 형제자매, 아내나 남편, 친구, 자식 또는 소원해진 그 누구한테라도, ―마음과 시간을 꿰어 한 자 한 자 수놓은 종이비단을 선물하자. 그것이 옷이 되어주거나, 진수성찬이 되어주거나, 보석을 구입할 수 있는 지폐가 되어주진 않을지라도 값진 비단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 비단은 우리 마음 속 직녀만이 짤 수 있기에 아무리 큰 포목상이나 지물포에서도 구할 수 없다. 어느 염색공장에서 그처럼 곱고도 섬세하게 물들일 수 있단 말이냐. 네모일 수도, 세모일 수도, 동그라미일 수도 있는 지면… 눈빛일 수도, 하늘빛일 수도, 불빛일 수도 있는 색깔… 대나무일 수도, 시냇물일 수도, 제비꽃일 수도 있는 글씨… 빗방울 소리일 수도, 낙엽이 구르는 소리일 수도, 종달새 소리일 수도 있는 대화… 그것이 편지인 것이다.
현대가 잃어버린 또 하나의 빛이 있다면 그것은 기다림이다.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어디서도 편지가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감지한지 오래다. 우편함을 보아도, 집배원이 지나가도 그 가방을 궁금해 하지 않는다. 매일매일 넘치는 우편함엔 인쇄물들뿐이다. 무더기로 처리된 용건뿐인 것이다. 나만을 위한, 그만을 위한 고유의 시간은 없다. 우리의 우편함에 더 이상 두 쪽으로 접힌 나비가 날아들지 않는다는 건 공룡이나 맘모스가 사라진 것과는 다르다. 편지는 분명 우리가 살려내야 할, 지구를 다시금 빛나게 할 종이비단인 것이다.
편지를 쓰기 위해선 아끼지 말아야 할 세 가지가 있다. 그 첫째는 시간이요, 두 번째는 마음이며, 셋째가 정성이다. 나는 이후로도, ―설령 몇 줄의 시를 놓치더라도, 몇 권의 책을 덜 읽게 되더라도 편지 쓰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을 것이다. 이 세상의 책들을 다 읽고 갈 수 없듯이 내 가슴속 시들을 다 쓰고 갈 수 없음을 가늠한 까닭이다.
어제도 오늘도 나는 가장 맑은 시간엔 편지를 쓰고, 그 다음엔 책을 읽고, 그 다음에야 시를 짓는다. 공들인 편지 한 통 한 통이 내 어린 글을 키워준 사회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굳게 믿는다. 또한 편지는 가장 맑고 따뜻한 명상이며 정화이므로 나는 이성이 살아 있는 한 만년필촉을 갈아 끼울 것이고, 주소들이 예쁜 수첩을 챙길 것이며 종이비단 한 필을 사랑할 것이다. 어쩌면 편지와 시는 운명이 동일한 형제인지도 모른다. 아니, 시인이 바로 신(神)의 편지봉투인지도 모른다. 편지가 없어지는 세상은 결코 정겨운 세상이 아니며, 시가 사라지는 세상은 향기로운 세상이 아닐 것이다. 랭스턴 휴즈와 ‘향수’가 빠져버린 세상을 상상해 보라. 그와 그의 시를 아예 몰랐던 이라면 모를까, 익히 알고 있던 사람이라면 랭스턴 휴즈라는 이름과 「향수」가 보이지 않는 세상을 오늘처럼은 ‘향수’하지 못할 것이다.
어느새 봄이 허리를 내밀어 거실로 들어오는 햇살이 순금빛이다. 이맘 때 우리 아버지는 본향으로 돌아가셨다. 두 아이가 몹시 앓고 있어서 나는 장례식에 불참하는 불효를 저질렀는데, 그때 받은 인자의 편지 한 통이 오늘 다시 나를 흔든다. 눈물자국이 군데군데 얼룩져 있는 그 오래된 편지를 옮겨 적으며, 시와 편지에 대한 나의 소회는 여기서 접고자 한다.
언니// 방문을 열면 지금도 아버지가 계실 것만 같아. 송정리 고모는 그날 저녁 때 오셨는데 대문에서부터 “오빠”를 부르며 통곡하셨어. 하얀 천을 걷고 절을 올리는 사이 어머니, 경자 언니 모두 울었어.
다음날 새벽차로 달려오신 청주 고모님은 “오빠, 나는 사람도 아니에요!” 쓰러지시며 생전에 자주 찾아뵙지 못한 것을 서럽게 서럽게 후회하셨어. 서울 작은아버지, 사촌들, 형부들 모두 오셨는데 언니만 없어서 얼마나 섭섭했는지 몰라.
입관할 때는 정말이지 너무 슬펐어. 염포는 내 손으로 박은 것이었고, 그 밖의 상복들은 마을 어른들이 꿰맨 것이야. 그때까지 몸이 굳지 않아 베옷을 입혀 드리기가 수월했어. 이승을 떠나시니 그렇게도 편안하신 것을…. 춘자 언니랑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언젠가 언니가 편지에 넣어 보낸 시 구절처럼 꽃상여를 타고 먼 길을 떠나셨어. 서꺼티 논과 부용 역전을 지나, 삼거리를 지나, 그 옛날 운동회 때 오징어를 사주시던 학교를 지나, 요령 소리와 함께 아카시아 만발한 사거리 방앗간을 지나, ―방죽거리를 지나 영원히 잠드실 산으로 가셨어. 묘혈에 관이 내려지자 왕열이 오빠가 뛰어들며 “고모부!” 주먹으로 눈물을 닦고, 마을 사람들도 코를 풀며 눈물바람을 했어. 예전엔 무심히 보았던 무덤들이 이제 보니 절반은 저승에, 절반은 이승에 물린 마지막 눈물인 것이었어.//1976. 5. 28. 동생 인자.
*『애지』2003-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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