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끈이로되
정숙자
메마른 땅과 바람의 중간에서
들쑥날쑥 어두운 태양
번갯불 몹시 튀어
짓찢기고 타더라도
뭣 하나 떨어뜨림 버림도 없는, 창공은
장마철 몇 억 겁을 긋고 다듬어 저 품이 되었을까?
어느 먼 곳에 눈을 묻고 걸었기에
햇빛 나른한 보도블록 위
목숨 줄 풀었는지
지렁이야, 지렁이야, 아직 파란 지렁이야
꿈꾸지 않고 사는 법 배워야겠다
처음 꿈꾼 게 꿈이었는데
마지막 버릴 것도 꿈이었구나
오래 헤아린 방향들, 발걸음도 줄여야겠다
처음 내다본 게 길이었거늘
최후에 덮을 것도 그거였구나
말 없는 서울의 모퉁이에서
구름 한 서랍 흘러간다
* <들소리 문학> 2013-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