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나의 근작시

봄은 끈이로되

검지 정숙자 2013. 7. 12. 01:59

 

 

    봄은 끈이로되

 

     정숙자

 

 

   메마른 땅과 바람의 중간에서

   들쑥날쑥 어두운 태양

 

   번갯불 몹시 튀어

   짓찢기고 타더라도

   뭣 하나 떨어뜨림 버림도 없는, 창공은

   장마철 몇 억 겁을 긋고 다듬어 저 품이 되었을까?

 

   어느 먼 곳에 눈을 묻고 걸었기에

   햇빛 나른한 보도블록 위

   목숨 줄 풀었는지

 

   지렁이야, 지렁이야, 아직 파란 지렁이야

  

   꿈꾸지 않고 사는 법 배워야겠다

   처음 꿈꾼 게 꿈이었는데

   마지막 버릴 것도 꿈이었구나

 

   오래 헤아린 방향들, 발걸음도 줄여야겠다

   처음 내다본 게 길이었거늘

   최후에 덮을 것도 그거였구나

 

   말 없는 서울의 모퉁이에서

   구름 한 서랍 흘러간다

 

 

   * <들소리 문학> 2013-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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