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기시감 외 1편/ 고영

검지 정숙자 2024. 12. 8. 01:16

 

    기시감 외 1편

 

     고영

 

 

  한적한 시골 도로에

  한적한 시골 버스가 지나간다

 

  승객도 없고

  아무런 감흥도 없이 지나가는 버스를 물끄러미   

  말린 겨우살이를 손질하며 본다

 

  겨우살이는 참나무에 얹혀살고

  우리는 겨우살이에 얹혀산다

 

  유난히 찬란한 봄볕 아래서

  우리는 서로 간절하게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버스 안에서 호기심의 눈빛으로 우리를 내다보는 운전기사에 대한 배려

  

  하루에 네 번

  겨우 형체만 보여주고 사라지는 버스를 닮아가는 것인지

  너는 단양에 온 후

  정기적으로 미소를 꺼내 보여준다

  그것이 최선이라는 듯

 

  노후를 맞기도 전에

  몸의 중심이 텅 비어버린, 그래서 앉는 것조차

  불편한

  의자에 묻혀

 

  너는 버스의 종착지를 보고

  나는 버스가 흘리고 간 매연煤煙을 본다

     -전문(p. 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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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나의 모든 전말이다

 

 

  그제는 수선화를 심었다 하루 만에 꽃이 피기를 기대했지만 하루 만에 피는 꽃은 없었다 성급한 건 나 자신일 뿐, 꽃은 성급하지 않았다 질서를 아는 꽃이 미워져서 어제 또 수선화를 심었다 하루 만에 꽃을 보기를 기원했지만 하루 만에 민낯을 보여주는 꽃은 없었다 아쉬운 건 나 자신일 뿐, 꽃은 아쉬울 게 없었다 섭리를 안는 꽃이 싫어져서 오늘 또 수선화를 심었다 하루 만에 꽃이 되기를 나는 또 물끄러미 기다리겠지만 포기할 수 없는 거리에서 꽃은, 너무 멀리 살아 있다

 

  한 사람을 가슴에 묻었다

  그 사람은 하루 만에 꽃이 되어 돌아왔다

     -전문(p.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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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당신은 나의 모든 전말이다』에서/ 2024. 12. 2. <문학의전당> 펴냄

 * 고영/ 1966년 경기 안양 출생, 부산에서 성장, 2003년『현대시』로 등단, 시집『딸꾹질의 사이학』『너라는 벼락을 맞았다』 『산복도로에 쪽배가 떴다』, 감성 시 에세이『분명 내 것이었으나 내 것이 아니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