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딸
김복희
나를 돕지 않을 신에게 기도한다
나를 여자라고 칭하면, 조금 더 진실에 가까워진 느낌이 들까
몸을 모아 가져가면
전부 오염된 증거이므로 무용하다고 한다
형사의 손에 들린 커피
바닥에 쏟아진 커피
형사에게 커피가 없었던 때에도
사람은 사람을 죽이고 시체는 썩는다
시간이 흘러간다는 것을 피부로 머리칼로 느끼면
포기가 아니라 사랑을 알게 될까
예수나 부처의 제자 중에서도
이름 없는 말단의 말단의 말단의 제자 된 자라도
붙잡고
이 몸을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묻고 싶다
형사는 일단 집에 가서 깨끗이 씻고 자고 먹으라고
한다 주량이 얼마나 되느냔 질문을 들었다
단위를 묻지 못해서 답하지 못했다
내가 입을 다물고 있자 형사가 덧붙인다
나중에 뭔가 찾으면 연락을 하라고
나중에 도움 주겠다고
-전문-
▶질의응답(발췌)_이은지/ 문학평론가
「사람의 딸」의 화자는 "나를 돕지 않을 신에게 기도한다" 심지어는 '나'를 '여자'로 구체화하여 일컬으면 "조금 더 진실에 가까워진 느낌이 들까" 궁리도 해본다. 그런데 '나를 돕지 않을 신'을 향한 이 기도는 곧장 형사의 심문으로 이어지고, 형사는 "몸을 모아 가져가면/ 전부 오염된 증거이므로 무용하다고 한다" 이 몸의 주인은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그것이 직전까지 기도하던 '나', 스스로를 '여자'로 바꿔 부르면서까지 진실에 근접하기를 소망하던 '나'의 몸이라면 이를 오염되었고 무용하다며 내치는 형사의 매정함은 나를 돕지 않을 신의 그것에 상응한다. 마음을 담으면 담을수록 마음을 온전히 투영하게 되어갈 순정하고 유연한 형식으로서의 기도와 달리 형사 신의 심문은 증거가 없으면, 혹은 증거가 충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입증할 수 없다.
"나중에 뭔가 찾으면 연락을 하라고/ 나중에 도움을 주겠다고" 돌려보내는 형사의 고작 "주량이 얼마나 되느냔 질문"에 화자는 "단위를 묻지 못해서 답하지 못"한다. 문답이 형식의 닫힌 엄정함 속에서도 서로를 향한 이해와 신뢰를 향상시키는 놀이이자 기술이라 여겨온 시인의 산문 구절을 떠올리면 이 시에서 형사가 함부로 던지는 질문은 대답을 기대하지도, 대답하는 이를 배려하지도 않는다. 나를 돕지 않을 신과 "나중에 도움 주겠다"는 형사의 상동성은 기도의 형식에 내재된 절망의 측면을 증폭시킨다. 기도는 대답을 기대할 수 질문이고 대답을 찾아가는 데 일평생을 할애해야 하는 질문이다. 그러나 시인은 이 무한한 무작정함의 절망의 판본만을 섬기지는 않는다. (p. 시154-155/ 론 166-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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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 2024-9월(417)호 <현대시가 선정한 이달의 시인 & 작품론> 에서
* 김복희/ 시인, 201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내가 사랑하는 나의 새 인간』『희망은 사랑을 한다』『스미기에 좋지』
* 이은지/ 문학평론가, 2014년『창비신인평론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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