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칸나가 흐르는 강/ 이현서

검지 정숙자 2024. 11. 26. 02:11

 

    칸나가 흐르는 강

 

     이현서

 

 

  이 붉은 울음은 어디서 태어나나

 

  두물머리 강가

  뜨거운 숨결 사이 흘러나오는 몸의 기억들이

  빛의 결가부좌 너머 아득한 수궁水宮에 이르면

  서로의 눈빛만으로도 빛나던 영혼

 

  아득히 퍼지는 물그림자를 따라 가만히 입술을 달싹이면

  꿈의 자장을 밀고

  강과 하늘의 경계가 지워지고

  불현듯 무색해지는 시간의 궤적

  고요의 소용돌이를 따라 슬픔의 지느러미가 돋아나요

 

  저문 꽃잠 속에서 삐죽삐죽 고개를 내밀던

  통증으로 각인된 다정한 속삭임처럼

  또 하나의 행성이 자라기 시작해요

 

  내 안에 갇혀 있던 오래된 등고선을 따라

  물살을 꽉 움켜쥔 손아귀를 풀면

  저만치

  찰랑, 수면을 깨뜨리는 흰나비 한 마리

  소실점 밖으로 사라지는 한 점 구름

     -전문(p. 91-92)

 

    --------------------

  * 『월간문학』 2024-9월(667)호 <이달의 시> 에서

  * 이현서(본명, 이명숙)/ 1958년 경북 청도 출생, 1996년『문예한국』 & 2009년『미네르바』로 등단, 시집『구름무늬 경첩을 열다』『어제의 심장에 돋는 새파란 시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