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멀어지는 방문/ 아타세벤 파덴

검지 정숙자 2024. 11. 3. 15:30

 

    멀어지는 방문

 

    아타세벤 파덴

 

 

  남자와 같이 탄 비행기가 곧 이륙해요 사람들은 내게 종종 꿈을 한국어로 꾸는지 물어봐요 다가간다는 것은 멀어진다는 말밖에 안 들려요 여기는 혼돈을 즐기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에요 엄마의 집은 엄마의 집이 아닌 것 같아요 눈앞에서 피를 토해 놓고서 거품이라고 해요

 

  엄마, 나 이제 피곤해요

 

  남자는 손에 카메라를 들고 폐허가 된 집에서 노는 아이들을 찍어요 아무도 남자가 어디서 나타났는지 궁금해하지 않아요 졸업은 언제고 공무원이 될 수 있냐는 질문은 아빠가 몇 년 만에 만난 딸에게 해주는 유일한 말이에요

 

  아빠, 나 아직도 미워해요

 

  나도 여기가 지중해인지 중동인지 헷갈려요 할머니는 큰 소리로 울고 할아버지는 여전히 코를 골아요 외할아버지도 죽기 전에 한번 보고 가라는 재촉에 밤에 산길을 달려요 쌍둥이는 계속해서 싸우고 공주님은 그림 그리기 대회를 열어요

 

  트렁크에 책을 잔뜩 싣고도 고양이가 보고 싶어요 화분에 물을 준 지 10일째, 벌써 장마가 시작됐겠네요 차 안에서 피부가 허벅지까지 검게 타는가 하면 발도 못 담근 바다가 보이기도 해요 수박씨는 입에서 내뱉고 토마토씨는 이빨에 심고 가요 결국 남자와 다른 문을 통과하게 돼요

 

  다가간다는 것은

  다다를 수 없는 그 무엇,

  드디어 비행기가 착륙해요

  가끔은 꿈속이 아니더라도

  언어가 나를 잊어버려요

  말은 통할 수 없는 것에 불과해요

    -전문(p. 8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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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네르바』 2024-가을(95)호 <신작시> 에서

  * 아타세벤 파덴 / 2022년 『시작』으로 등단,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 박사과정 재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