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그해 오늘/ 고영민

검지 정숙자 2024. 10. 31. 02:34

 

    그해 오늘

 

    고영민

 

 

  오랜만에 만나 함께 점심을 먹고

  체한 듯 속이 더부룩하다고 하여

  약국에 들러 소화제를 사 먹이고

  도산공원을 걸었다

  그해 오늘 저녁 그녀는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깨어나지 못했다

 

  그해 오늘

  나는 또 그녀를 만나 점심을 먹고

  커피를 손에 들고 도산공원을 걷는다

  팔을 벌려 오늘의 냄새를 껴안는다

 

  납골당에 다녀온 조카가 단톡방에

  사진을 올렸다

    1주기야,  크고 뚱뚱한 엄마가

  어떻게 저 작은 항아리 속에 들어간 걸까 ㅎ

 

  동의 없이 무언가를 빼앗긴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해 오늘

  삼풍백화점이 붕괴되었다

  갈라파고스 땅거북의 마지막 개체인

  '외로운 조지(Lonesome George)'가 죽었고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은 수영으로

  대한해협을 건넜다

 

  그녀를 만난다, 그해 오늘

  그 거리에서 

 

  아직 찾아오지 않은 시간의

  일이지만

      -전문(6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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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네르바』 2024-가을(95)호 <신작시> 에서

  * 고영민/ 2002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악어』『공손한 손』『봄의 정치』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