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김밝은_말이 없는 산처럼 고요롭게 평화롭게(부분)/ 바위 하나 안고 : 오세영

검지 정숙자 2024. 11. 1. 02:43

 

   

    바위 하나 안고

 

     오세영

 

 

  홀로 어찌 사느냐고요.

  바위 하나 안고 삽니다.

  집도 절도 아닌, 하늘도 땅도 아닌······

  고갯마루 저 푸른 당솔 밑

  웅크리고 앉아 있는

  바위 하나 안고 삽니다.

  바위가 그의 품에 한 그루의 난을 기르듯

  말씀 하나 기르고

  바위가 그의 가슴에 금을 새기듯

  이름 하나 새기고

  바위 하나 안고 물소리를 듣습니다.

  집도 절도 아닌

  미륵도 부처도 아닌······  

     -전문, 『77편, 그 사랑의 시』 (황금, 2023)

 

 

  ▶ 말이 없는 산처럼 고요롭고 평화롭게/ 오세영 시인의 '산재聾山齋' (부분)_김밝은/ 시인

  선생님 댁은 서울에서 자동차로 2시간이 넘게 달려서야 닿는 안성시 금광면. 아직 봄이라고 불러야 할 5월인데도 일찍 찾아온 무더위 때문에 길을 찾는 이정표가 더위에 주저앉으려는 듯 달아올랐다.

  일찍 출발해서인지 약속 시각보다 일찍 도착해서 근처 나무 그늘에서 잠시 숨을 돌린 후, 시인의 집으로 향했다.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목적지가 가까워지자 눈을 맑게 해주는 들녘이 펼쳐지더니 시원한 저수지가 신기루처럼 나타났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낚시터이긴 했지만 산 아래 자리 잡고 있어서 고요한 분위기며 구름이 내려앉은 저수지가 있는 주변 풍경은 고향을 찾은 듯 마음 설레게 했다.

  주로 집중해서 글을 써야 할 때 오신다는 시인의 집은 뒤로는 산이 앞으로는 작은 정원이 푹 감싸안고 있어서 저수지 쪽에서 보면 지붕만 빼꼼히 바라보이는 곳이었다.

  선생남 댁은 잘 가꾼 잔디밭을 뒷마당을 뒤로 하고 앞으로는 과일나무며 꽃나무들이 정갈하게 심겨 있어서 집 구경하는 사람처럼 한참을 서성거렸다. 정원 한편에는 흰 작약과 자주달개비, 붓꽃이 활짝 피어 있어서 자꾸 눈길이 갔다.

               

  시인의 집 현관 입구에는 <聾山齋>라 쓰인 현판이 걸려있었다. 돌아가신 무산 오현스님이 생전에 지어주신 것을 이근배 시인이 써주셨다고 하셨다. "말이 없는 산처럼 살아라"라는 깊은 뜻을 담고 있으니 어쩌면 사방이 고즈넉한 시인의 집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로는 산을 두고 앞으로는 저수지를 바라보고 있으니 배산임수의 좋은 터인 듯도 했다. (p. 시 21-22/ 론 18-19 ·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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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네르바』 2023-겨울(95)호 <시인의 집/ 오세영 편> 에서

  * 오세영/ 1942년 전남 영광 출생, 1965~68년 박목월에 의해 『현대문학』추천으로 등단, 시집 『사랑의 저쪽』『바람의 그림자』『마른 하늘에서 치는 박수 소리』등, 학술서적 『시론』『한국현대시 분석적 읽기』등,  영역본『밤하늘의 바둑판』은 미국의 비평지 Chicago Review of Books에 의해 2016년도 전 미국 최고시집(Best Poetry Books) 12권에 선정됨. 영어, 불어, 독일어, 스페인어, 체코어, 러시아어, 중국어, 일본어 등으로 번역된 시집이 있음. 

  * 김밝은/ 2013년『미네르바』로 등단, 시집『술의 미학』『자작나무숲에는 우리가 모르는 문이 있다』, <미루> 동인, <빈터> 회원.